[국어작문] 논설문 작성하기(한글창제)
- 최초 등록일
- 2008.10.07
- 최종 저작일
- 20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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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2007학기 국어작문시간에 과제로 제출한 자료입니다. 논증문을 약 2000자정도로 작성하는 것인데요. 한글창제에 관하여 논설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간단하긴 하지만 A+받은 자료입니다. 요긴하게 쓰세요.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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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세종대왕은 아들과 딸의 도움을 받아 한글을 창제했다.
올해는 우리 민족의 문자, 한글이 반포된 1446년으로부터 561번째 되는 해이다. 몇해 전,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이 발음기관의 생김새를 본따 만들어졌음이 밝혀지면서 다른 문자와 비교해서 우수함이 입증되었다. 또한, 한글을 연구 중인 미국인 학자, 레드야드 교수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문자학적 사치! 세계 문자사상 가장 진보된 글자”라는 표현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이 확인된다.
숨을 쉬는 것처럼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 국민은 이러한 한글을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대부분이 교과서의 한글 창제와 관련된 내용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내용은 정인지를 포함한 4명의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관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자식들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교과서의 내용과 달리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글 창제와 관련하여 집현전의 학자 등이 함께 했다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좋은 증거가 된다. 오히려 집현전의 부제학이었던 최만리를 대표로 7명의 학자들이 집단으로 임금이 신하들과 상의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 하는 것에 대한 비난이 담긴 상소를 올려 한글 사용을 반대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집현전의 학자들이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면 이런 상소는 있을 수 없다. 또한, 한글 창제에 참여한 학자로 주목을 받는 신숙주는 한글 창제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외국어에 능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가 요동을 방문한 것이 훈민정음 창제에 필요한 자료 수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되었는데 이는 신록을 통해 사실이 아님이 확인되었다. 그가 요동을 방문한 해가 훈민정음 창제 이후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그는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일본에 있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어 그가 한글 창제에 참여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 되었다. 오히려 신숙주의 문집에는 한글 스물여덟 글자를 만든 것은 세종이라고 적혀있어, 자신은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서적을 편찬하는 일에만 참여했음을 알려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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