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의 양상과 연극의 저류
- 최초 등록일
- 2008.08.16
- 최종 저작일
- 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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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희의 양상과 연극의 저류 주제의 과제물입니다.
목차
1. 나라에서 벌이는 연희
2. 소학지희
3. 꼭두각시놀음의 행방
4. 탈춤의 저류를 찾아서
본문내용
4. 탈춤의 저류를 찾아서
저자는 농악의 잡색 놀이에서 탈놀이가 나왔다는 농악대굿 기원설을 주장한다. 즉, 탈을 쓰는 무리가 농악대를 따라다니는 잡색 역할을 하다, 굿을 하는 원래 행사 후 놀이를 벌인 것이 바로 탈춤이라는 것이다.
이는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바탕으로 정초 농악대에 의한 집돌이 후에 굿을 하는 절차에 탈춤이 포함된 게 발전했다는 주장이다.
<동국세시기>에 “비단으로 신의 탈을 만들어 당집에다 넣어두면 섣달 스무날 이후에 신이 고을 사람에게 하강해서 그 탈을 쓰고 아내 및 읍촌을 돌아다니면서 논다”는 것으로 굿과 탈춤의 관계를 알 수 있다.
탈은 평소에 신으로 섬기고 굿을 할 때면 신이 하강해서 춤추며 논다고 하기에 적합했으며, 신의 탈이라는 것이 양반, 각시, 중 등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해서 춤을 추면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문제로 삼아 탈춤이 생겨났다.
(참고: 손태도는 ‘전통 사회 지방의 산대희’에서 정초 농악대의 마을굿적 요소가 마을굿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지방 관아의 나례 의식이 민간에서 행해지는 가운데 풍농 등을 바라는 마을굿적 요소와 결합하게 된 것으로 보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잡색 무리 중 양반으로 분장한 인물이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동작을 하는데 이 인물을 양반광대라고 한다. 이런 양반광대의 행동에서 굿 절차와 구별되는 연극 탈춤이 시작된다. 그런 탈춤의 전형으로 하회탈춤이 있다. 하회 마을은 지체 높은 사대부가 위세를 떨쳤으나 하층민들에게 해마다 한 번씩 별신굿과 탈춤을 할 수 있게 하는 언론자유를 누리게 함으로서 효율적인 통제를 하고자 했다.
조선전기에는 유학이념의 통치 질서를 근거로 유교식 제사를 정착시키고자 하였으나 굿놀이를 끈덕지게 전승해 굿과 제를 병존하는 타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한편 굿에 따른 탈춤이 사대부에 대한 강한 반감을 나타낸다.
이제신의 <청강쇄어>에서 ‘중광대, 할미광대, 초란광대, 박광대’라는 어느 지방 탈춤에서든지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을 열거한 것으로 보아, 탈춤이 널리 존재하고 전형적인 등장인물이 잘 알려진 사정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