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정과 보존
- 최초 등록일
- 2008.07.28
- 최종 저작일
- 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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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왕조실록의 편찬과정과 보존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편찬(編纂)과정
2. 실록(實錄)의 보관(保管)
본문내용
1.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편찬(編纂)과정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시조(始祖)인 이태조로부터 철종(哲宗)까지 25대 472년간(年間)(1392~1803)의 역사(歷史) 즉(則) 172,000여 일(日)을 연ㆍ월(月)ㆍ일(日) 순서(順序)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記錄)한 책(冊)이며 총 1,893권 888책(冊)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양의 역사(歷史)서이다. 반면(反面)에 26대(代) 고종과 마지막 국왕(國王) 27대(代) 순종의 실록(實錄)도 있지만 일제강점(日帝强占)기에 만들어 진데다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처럼 엄격한 과정(過程)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료(史料)적(的) 가치(價値)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의 기초자료 작성에서 실제 편술(編述)까지의 편수(編修) 간행(刊行)작업(作業)에 직접 참여했던 사관(史官)은 독립성(獨立性)과 기술(技術)에 대한 비밀(秘密)성(性)을 제도적(制度的)으로 보장받았다. 원래 사관(史官)은 중국(中國)의 전설시대인 황제(皇帝) 때부터 있었으며 공갑ㆍ창힐ㆍ저성 등이 사관(史官)이었다고 하나 이들의 실존(實存)여부(與否)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은(상)나라와 주나라 이래로 태사ㆍ소사ㆍ내사ㆍ외사ㆍ좌사ㆍ우사ㆍ여사 등 여러 이름으로 다양한 사관(史官)들이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고구려(高句麗) 영양왕 시대 `유기(留記)`, 백제(百濟) 근초고왕(近肖古王) 시대 `서기(書記)`, 신라(新羅) 진흥(振興)왕(王) 시대 `국사(國史)` 등의 사서(史書)가 편찬(編纂)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어떠한 형태로든 사관(史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본격적인 역사(歷史) 편찬(編纂)의 주무부서인 춘추관(사관(史官))은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춘추관은 고려(高麗) 초기 광종(光宗) 시대에 비로소 설치되었다. 송(宋)나라 제도를 적용시켜 운영했지만 무신(武臣)시대를 거치면서 기사의 내용이 정치권(政治權)의 영향을 받아 다소 객관적(客觀的)이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사관(史官)은 조선시대(朝鮮時代)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사관(史官)은 전임(前任)사관(史官)과 겸임(兼任)사관(史官)이 있었다. 전자는 예문관의 전임(前任)관(官)으로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임하였던 봉교(奉敎)(정(正)7품(品) 2명), 대교(정(正)8품(品) 2명), 검열(檢閱)(정(正)9품(品) 4명) 등 8명이 있었으며, 후자는 서울과 지방(地方)의 각 관청에 소속되어 본직(本職)을 수행하면서 춘추관의 직책을 겸임했다(대체로 60여명).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