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삶에게 의지를 불어넣다.(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8.06.26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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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희망, 삶에게 의지를 불어넣다.(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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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남편의 사업 실패로 형편이 매우 어려워진 가정이 있었다. 하루하루 지옥 같은 생활 속에서 부인은 한강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자살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아이와 함께 여기서 삶을 끝마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렇게 멍하니 다리위에서 한강을 내려다보는 와중에 갑작스럽게 부인의 아이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것 같은 나이의 아이는 부인에게 떠듬떠듬 이야기했다. “엄마...죽지마...” 울면서 이 말만을 반복하는 아이에게서 어머니는 다시 살아보자는 강한 욕구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것이 아직까지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는 이유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저자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 속에서 깨닫고 느낀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처음 수용소에 입소했을 때 저자가 느낀 두려움, 그 속에서 느끼는 ‘집행유예의 환상’은 삶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조차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생각해보게 하였다. 단 하나의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도 인간은 긍정적인 면, 희망적인 부분을 찾으려 한다. 그렇기에 힘든 현실에서도 인간은 쉽게 자살을 택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저자는 수용소에 대한 충격으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절망이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고 했지만 나는 그런 저자의 생각에는 반대한다. 자기 삶의 끝이 죽음으로 정해져있고 그 과정이 고통밖에 없는 절망속이라면 오히려 고통밖에 남지 않는 시한부 환자가 안락사를 원하는 것처럼 편하게 삶을 끝내길 바라지 않을까? 죄수들이 ‘집행유예의 환상’이 깨지고 비참한 현실에 처해도 고압선에 몸을 던진다거나하는 자살을 택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올지 모르는 희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중에 저자도 삶아가야 할 의미를 깨닫고 다른 죄수들에게 삶의 의지를 불어넣는데 이는 저자에게 처음의 충격으로 인한 절망이 아니라 미래의 희망이 살아가는 의지를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빅터프랭클린, 죽음의 수용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