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꼬 대전기
- 최초 등록일
- 2008.06.17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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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보나벤뚜라에 의한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꼬 대전기
서평 -생각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논하는 마음으로-
목차
서론
본론
제1부. 제1장 세속에서의 생활
제2장 하나님께 완전히 자신을 맡기고 성당 셋을 수리하다
제3장 수도회의 설립 - 회칙이 인가되다
제4장 수도원의 발전과 회칙의 확인
제 2 부 돌아가신 후에 일어난 기적들 중 몇 가지
결론
본문내용
서론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른 삶을 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도 같은 생활방식이 ‘프란체스꼬의 생활방식’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소유를 포기하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것은 산업화와 도시화된 사회 속에서는 혼자서는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으로부터 따돌림과 수모를 끊임없이 겪게 될 것이며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 거하다가 사회 속에서 조용히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추측인가? 중세 이후 근대에는 청교도 운동이 있었고, 현대에는 이러한 청교도 운동의 생활 방식인 ‘청지기적 생활 방식’이 있을 것이다. 시대적 요청에 따라 그 시대에 걸맞은 생활 방식이 있을 것이다.
현대 의학은 기적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항상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항상 일어나는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적인 일회성이며 반복성을 가지지 않는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항상 기적일 수 없고 익숙할 만큼 친숙하고 자주 있는 일들이 우리에게는 더욱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따르는 이들에게는 기적이 필요하다. 신앙적으로 필요한 기적은 오직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하기 위한 곳에 일어나야하며 그러한 곳에서 기적이 기적됨을 볼 수 있다. 프란체스꼬와 같은 특수하고 특별한 하나님의 은사를 입은 이들의 사역에는 기적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이 모두가 그러한 특별한 은사를 입지 못했다. 왜 그러한가? 모두가 그러한 특별한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세인들에게 있어서 유덕함이란 영적인 것을 추구하는 도구로 생각되었다. 윤리적인 것 그 이상의 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데에 덕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여 지는 수행으로 더 낳은 세계를 향한 길이 그들에게 허락될 것이라는 중압감에 놓여 있었다. 그러한 이유가 무엇에 있었겠는가? 정치경제체계와 사회문화적 거대함에 소수민이며 힘이 없던 이들에게 저항적 의식의 부재가 아니었겠는가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