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워홀(팩토리스타일)
- 최초 등록일
- 2008.06.13
- 최종 저작일
- 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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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앤디워홀의 소개와 그의 팩토리스타일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앤디워홀의 생애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에디 세지윅(1943~71)
알루미늄 호일 의상
앤디워홀 팩토리展
국내의 워홀 열풍
앤디 워홀에 대한 평가
본문내용
앤디워홀의 생애
워홀이 평생 명성과 부를 좇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그가 남에게서 작품의 아이디어를 구했고,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빈번히 차용했으며, 조수를 고용하여 작업의 상당 부분을 맡겼고, 같은 주제를 무수히 반복하고, 때로는 자신의 사인가지도 남들에게 맡기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는 것 역시 공개된 일들이다. 그는 상업성이 있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으며, 작품을 주식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가 이런 행동을 통해 무엇을 의도했든 간에 (혹은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데 있다. 워홀이 제시한 문제점들은 한마디로 미술의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가없는 부정과 도전으로 규정할 수 있는데 대게 다음 몇 가지를 그 특성으로 열거 할 수 있다 .즉 오리지낼리티의 부정, 작가의 수작업( authorship) 이나 기량에의 무관심, 반복을 통한 작품의 유일무이성의 부정, 그리고 무자비한 상업주의와 출세지상주의 등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미술품에 따라 다니는 천재와 영감이라는 아우라( aura)를 자각의 명성이 발하는 아우라로 대치하였고, 고급정통미술과 대중미술의 경계를 부정하고, 더 나아가 미술품을 상업시스템에 종속되는 이래 상품으로 파악, 제시했다.
그럼 워홀은 어떤 배경을 가진 미술가였는가? 그는 체코슬로바키아 노동 이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가난하고 병약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통속적인 의미의 사회명사가 되고 싶어 했던 그는 연예인이나 유명작가를 흠모하여 영화배우의 사진을 모으거나 팬클럽에 가입하는 등의 특이한 열정을 보였으며, 자신을 그들과 동일시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는 성인 이 되거나 미술가로 성공한 뒤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정통미술과 상업 미술의 구분을 강조하지 않았던 피츠버그의 카네기공과 대학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그는 졸업 후 뉴욕으로 가서 상업 디자이너로서 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즈음부터 그는 자신에 대한 신화가 쌓이는 것을 목적으로 나이나 배경 등을 정확히 말하지 않았으며, 인터뷰 때에는 얘기 꾸미는 것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의 주변 인사들은 한결 같이 그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사적인 것 사이의 괴리를 인정하고 전자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지적해 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