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견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08.05.24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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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택견에 대해서 정리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1. 택견의 역사 및 명칭
2. 택견의 특징
본문내용
1. 택견의 역사 및 명칭
유구한 역사와 문화 ․ 예술적 가치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전통무예 택견은 그 역사를 고구려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동남(東南)으로 생활환경 조건이 좋은 곳을 찾아 해안지대 혹은 산으로 떠돌아다니면서 처음에는 고기잡이, 열매채취, 가축사육 등으로 생활을 영위하면서 송화강, 압록강, 대동강 부근으로 진출하여 농경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정착생활을 하게 되어 부족국가를 이루게 되었으며 그 중 만주의 부여족(夫餘族)의 지족(枝族)이었던 동명성왕이 인근 부족들을, BC 37년경 졸본 부여에 국가체제를 정비한 고구려를 세움으로써 삼국시대의 역사의 장은 열리게 된다.
택견의 명칭은 옛문헌을 통해 여러 가지로 불리운 것을 알 수가 있다. 조선조 22대 정조(1777~1800)때 이성지(李成之)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재물보(才物譜)에는 『手搏爲卞 角力爲武 若今之 탁견』이란 글이 적혀져 있다. 이것을 풀이하면 ‘수박을 변이라 하고 각력(힘 다루는 것)을 무라 하니 지금의 탁견과 같다는 뜻’으로서 표기되어 있다. 단재(丹齋) 신채호(申採浩: 1880~1936)의 조선상고사(朝蘚上古史)에 보면 덕견 이라고 되어 있으며, 매하(梅下) 최영년(崔永年)의 해동죽지(海東竹枝: 우리나라의 풍속에 대하여 기록한 책)에는 탁견희(托肩戲)라고 기록되어 있고, 1919년에 저술한 안자산(安自山)의 조선무사영웅전(朝鮮武士英雄傳)의 기록에는“근래(近來)에도 청년(靑年)들이 씨름보다 소이(小異)한 수박희(手搏戱)를 행(行)함이 있던바 소위(所謂) ‘탁견’이라 하는 것이 그 종류(種類)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리선유의 오가션집 박타령에는 착견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우리말사전에는 ‘태껸’ 또는 ‘택견’으로서 한 발로 서로 상대방의 다리를 차서 넘어뜨리는 경기(각희脚戱)로 표현하고 있으며, 조선어대사전(朝鮮語大辭典)에도 택견이란 한쪽 발로 서로 넘어뜨리는 유희(遊戱)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민족무예 택견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덕견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