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고조선
- 최초 등록일
- 2008.05.15
- 최종 저작일
- 2008.05
- 10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한국 고대사회와 국가 수업중 고조선에 대한 발표 보고서입니다.
목차
Ⅰ. 삼국유사에서의 단군신화
Ⅱ. 고조선
Ⅲ. 기자조선
Ⅳ. 위만조선
Ⅴ. 한사군
Ⅵ. 단군릉에 대하여
본문내용
Ⅱ. 고조선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조선을 위만조선과 구분하려는 의도에서 ‘고조선’이란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고, 그뒤에는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 용어가 널리 쓰였다. 지금은 단군이 건국한 조선과 위만조선을 포괄하여 고조선이라고 부른다. 고조선의 건국시기는 확실하지 않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단군신화에서는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고 기술하였으나, 그대로 믿기 어렵다. 건국연대를 위로 끌어올린 이유는, 역사가 오래될수록 그 왕조는 권위가 있으며 민족도 위대하다는 인식의 반영에 불과하다. 고조선이 처음 역사서에 등장한 시기는 기원전 7세기 초이다. 이 무렵에 저술된 《관자》에 ‘발조선’이 제나라와 교역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또 《산해경》에는 조선이 보하이만 북쪽에 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기록에 나타난 조선은 대체로 랴오허 유역에서 한반도 서북지방에 걸쳐성장한 여러 지역집단을 통칭한 것이다. 당시 이 일대에는 비파형동검문화를 공동기반으로 하는 여러 지역집단이 성장하면서 큰 세력으로 통합되고 있었다. 단군신화는 고조선을 세운 중심집단의 시조설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가, 뒤에 고조선 국가 전체의 건국설화로 확대된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 전국시대에 들어와 주나라가 쇠퇴하자 각 지역의 제후들이 왕이라 칭하였는데, 이때 고조선도 인접국인 연나라와 동시에 왕을 칭하였다고 한다.
더욱이 고조선은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연을 공격하려다가 대부 예의만류로 그만두기도 하였다. 이렇게 고조선은 BC 4세기 무렵 전국칠웅의 하나인 연과 대립하고, 또 당시 중국인들이 교만하고 잔인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체제를 갖추었다. 그러나 BC 3세기 후반부터 연이 동방으로 진출하면서 고조선은 밀리기 시작하였다. BC 300년을 전후한 시기에 연의 장수 진개가 요하 상류에 근거를 둔 동호족을 원정한 다음 고조선 영역내로 쳐들어왔다. 이때 연은...
참고 자료
이기백, 《한국사 신론》, 일조각, 2002.
한국고대사학회, 《한국 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
최몽룡, 《한국 고고학·고대사의 신 연구》, 주류성, 2006.
이덜일外,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역사의 아침, 2006.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 동아일보사, 2005.
이도학, 《한국고대사, 그 의문과 진실》, 김영사, 2001.
고조선사연구회, 《고조선의 역사를 찾아서》, 학연문화사, 2007.
조법종, 《고조선 고구려사 연구》, 신서원,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