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와 평균율
- 최초 등록일
- 2008.05.14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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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J.S Bach (바흐)의 생애와 평균율에 관한 간단한 리포트
목차
1. 생애
2. 평균율
본문내용
1. 생애
요한 세바스티안은 1685년 중부 독일 아이제나흐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양친을 여의고, 큰형 요한 크리스토프의 집에서 살았으나 큰형의 가족 수가 늘어나자 자립을 해야 했던 바흐는 1700년 봄 북독일의 뤼네부르크로 가서 그 곳 고등학교 급비학생이 되어 루터파의 교육을 받으면서 교회의 합창단원으로서 북독일악파의 다양한 종교음악과 친숙하게 되었다.
17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주자로 채용되었다. 오르간 주자는 오랫동안 희망하였던 자리였으므로 성능이 좋은 오르간이 설치된 새 직장에 서 그는 열심히 오르간 연주법과 작곡법을 공부하였다. 그는 성가대를 훈련시키는 한편, 과거와 당시의 대가들의 작품을 필사·연구하여 점차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다.
1707년 바흐는 뮐하우젠으로 옮겨, 성브라지우스교회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고 가을에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하였으며, 두 사람 사이에서 그 후 13년 동안에 7명의 자녀가 태어났는데, 그 중 빌헬름 프리데만(1710∼84)과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88)은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하였다.
결혼한 이듬해 바흐는 다시 바이마르로 돌아가, 궁정예배당의 오르간 주자가 되었다. 약 10년간의 바이마르시절에 그는 오르간 주자로서 명성이 높아지고 작품도 점차 원숙해져 대가로서의 풍모를 보이기 시작 하였다.
1720년에 아내 마리아 바르바라가 죽고, 이듬해 35세의 바흐는 안나 막달레나를 새로 아내로 맞이하였다. 이들 사이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막내인 요한 크리스티안(1735∼82) 차남인 C.E 바흐에 견주어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 라고 불리는 음악가로 성장한다.
바흐는 원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무리한 공부로 인해 눈이 상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는 거의 실명상태였다. 1750년 초 눈수술을 받았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데다 수술 후 먹은 내복약의 부작용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그해 7월 28일 사망하여 성 요한교회의 묘지에 묻혔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