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왕정복고
- 최초 등록일
- 2008.05.09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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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랑스 1,2차 왕정복고 과정과 전후 흐름에 대한 리포트
목차
없음
본문내용
왕조복고는 제 1차 왕정복고와 제 2차 왕정복고로 나누어진다. 1815년 3월 20일부터 1815년 6월 22일 까지 있었던 나폴레옹의 백일천하를 기준으로 이 시기를 나눈다. 황제에서 폐위된 나폴레옹은 엘바 섬의 군주로 보내지는데 나폴레옹은 그곳을 탈출해서 파리로 진격했다. 왕정복고를 위해 귀국했던 루이 18세는 벨기에로 도망을 갔고 나폴레옹의 지지자들은 나폴레옹과 규합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나폴레옹은 예전의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가 아닌 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전향 되었다. 빈에 모인 유럽 군주들은 나폴레옹의 복귀를 반대하고 대규모의 군대를 모아서 전투를 재개했다. 나폴레옹은 이에 맞서 전투를 했지만 1815년 6월 18일에 워털루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하면서 그의 통치는 백일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루이 18세는 왕위에 복귀하고 정복 전쟁을 통화 확장된 프랑스국경은 다시 대혁명이전의 국경으로 돌아간다. 동맹국들은 파리조약으로 모든 책임과 이행을 요구했다. 돌아온 루이 18세는 혁명의 성과를 부인하면 왕정이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를 헌장의 제정으로 변화에 대변했다. 헌장의 내용에서 입헌 군주제를 재확립시켰지만 신앙의 자유, 법적 평등, 관직개방을 비롯하여 혁명 중의 재산처리를 인정하는 등, 혁명의 성과 중 많은 것을 인정하고는 있었다. 이제 국가 통치 형태는 왕정으로 회기하여도 사상의 전반적 기반은 공화정에 있다. 하지만 1791년의 헌법에 비교한다면 상당히 보수적인 것이었다. 헌법은 제정되지 않고 헌장에 의한 왕권과 양원제 의회의 타협 시도는 빈체제에 호응하여 차차 반동적 경향이 강해졌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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