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황제 측천무후
- 최초 등록일
- 2008.04.30
- 최종 저작일
- 2004.12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측천무후에 대하여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성신황제(聖神皇帝) 측천무후, 즉 무측천(武則天: 624~705)의 본명은 무조(武照), 당(唐) 고종(高宗)의 황후였으나 고종이 죽은 후에 황제에 등극하였다. 황제로 16년간 재위하였지만 실제로는 50여년간 집권을 한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황제이다. 무측천은 황제에 등극한 후에 이름을 조(明 아래에 空이 있는 글자. 무측천이 새로 만든 글자임)로 고쳤다. 측천무후를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칙천무후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즉천무후라 하기도 한다. 이는 한자의 독음으로 빚어진 문제인데, 우리 나라에서 편찬된 자전에서 則자의 표준음을 칙(법칙, 본받다)과 즉(곧)으로 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무측천의 등장...황후가 되기까지
624년(唐 高祖 武德 7년) 1월 23일 무측천은 수도 장안(長安)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관적은 병주(幷州) 문수(文水: 지금의 산서성 문수)이다. 그녀의 아버지 무사확은 수(隋) 양제(煬帝) 때 목재상이었는데 수양제의 대형 토목공사 덕택으로 거부가 되었다. 620년 무측천의 아버지는 본처가 병으로 사망하자 수왕조 때의 권세가 양달(楊達)의 딸과 재혼하였다. 그후 그들은 세 명의 딸을 낳았는데 그 중 두번째 딸이 바로 무측천이다.
무측천은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고 담이 컸다. 일찍이 무측천의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역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무측천은 13~14세 때 이미 많은 서적을 박람하여 견식을 넓히고 시사(詩詞)의 기초를 닦았을 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636년(당 태종 貞觀 10년)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황후 장손씨(長孫氏)가 병사한 후, 그 이듬해에 태종은 무측천의 용모가 출중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황궁으로 불러 재인(才人: 가무로써 황제를 섬기는 아주 낮은 등급의 후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녀는 성격이 거칠고 애교를 부릴 줄 몰랐기 때문에 좀처럼 태종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