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의 일생
- 최초 등록일
- 2008.04.13
- 최종 저작일
- 2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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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율곡이이에 대한 조사
목차
1. 가계와 출생
2. 유·소년기
3. 청년기
4. 장년기
5. 말년기
본문내용
율곡은 출생하여 오죽헌에서 자라다가 6세 때에 서울로 올라와 10년간 살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일컬어졌으며, 13세에 진사 초시에 응시하여 합격하였는데, 이후 9번이나 과거에 급제하여 9도장원공((九度壯元公 : 아홉 번 장원한 사람)이라 불리게 되었다. 16세 되던 해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고, 수운판관으로 임명되어 평안도로 출장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가 신사임당이 1551년(명종 6년) 48세의 나이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어머니를 경기도 파주시 동문리 자운산에 장사지내고 3년상을 지냈다. 모든 절차를 가례에 따라하여 상복과 삼띠를 벗거나 풀지 않았으며, 음식을 올리고 그릇을 씻는 등 모든 일을 노비들에게 시키지 않고 손수하였다고 한다.어머니의 죽음과 서모 권씨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던 율곡은 18세에 봉은사를 찾아 불경을 읽기도 하였다.
3. 청년기
19세 때 평생의 동지가 된 우계 성혼(牛溪 成渾 : 1535~1598)을 만나게 되고, 3년상을 마친 그 해 3월에 금강산으로 들어가 불교 공부를 하게 된다. 그 당시 중은 가장 천대를 받던 때이므로 이러한 행동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 것이었다. 불교에 만족하지 못하고 노장사상도 함께 탐구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점은 유교만 공부하던 그 당시 보통 선비들과는 다른 점이었다. 그러다가 논어를 다시 읽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산을 내려왔다. 금강산에 들어간 지 1년 후의 일이었다. 이 때 율곡은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는 지표로 삼는 자경문을 지었다.
21세에 한성시에 응시하여 수석으로 합격하고, 22세에 성주목사 노경린의 딸과 혼인하였다. 23세 때 성주 처가에서 강릉 외가로 가는 도중에 예안의 퇴계 이황(退溪 李滉 : 1501~1570)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퇴계는 그 때 58세의 원숙한 대학자였다. 이 때의 인연으로 두 사람은 시를 주고 받고, 학문에 대하여도 서로 강론하게 되었으며 후에 편지도 주고 받았으며 율곡은 퇴계를 스승처럼 존경하게 되었다. 퇴계는 율곡을 만난 후 여러 사람에게 후생가외(後生可畏 : 후배들이 두려운 것이라는 뜻)라고 칭찬하였다.
23세 겨울에 별시서 천도책(天道策)으로 장원급제하여 당시 고시관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26세 때인 1561년(명종 16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운산에 모신 신사임당의 묘에 합장한 후 3년상을 치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