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적 교육 기관의 설립
- 최초 등록일
- 2008.04.05
- 최종 저작일
- 2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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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적 교육 기관의 설립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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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호 개방 이후 박영효, 김옥균 등 일부 개화 사상가들은 개화 운동의 일환으로 교육 개혁을 주장하였고, 독립 협회도 부국강병을 위하여 근대 교육의 실시를 주장하는 등 근대적 교육 기관이 설립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갔다.
1883년에 함경도 덕원 주민들은 개화파 인물들의 권유에 의하여 기금을 모아 최초의 근대적 사립학교인 원산 학사를 세우고 문예반 50여 명과 무예반 200여 명을 모집하여, 산수.기기. 농업 등의 근대 학문과 무술을 가르쳤다.
같은 시기에 정부는 일종의 통역관 양성소인 동문학이라는 영어 강습 기관을 세워 오전. 오후 두 반으로 나누어 영어, 일어 등을 가르쳤다. 그 후 1886년에 정부는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한 민영익의 주장에 따라 서울 정동에 육영 공원을 세우고, 3명의 미국인 교사를 초빙하여 좌원과 우원에 현직 문무 관료와 상류층의 자제들을 뽑아 영어를 비롯한 수학, 지리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 등 각종 근대 학문을 교육하였다.
갑오개혁에 의해 학부 아문이 설치되어 근대적 교육 기관의 설립과 운영을 담당하였다. “국가의 부강은 국민의 교육에 있다” 는 내용의 교육 입국 조서가 반포되었고 ,한성 사범학교 관제, 외국어 학교 관제 등을 공포하여 교원 양성과 학교 제도 등을 정비하였는데, 이에 따라 1895년 한성 사범학교가 개교되었다.
정부는 같은 해 소학교령을 공포하고, 수업 연한 6년의 관립 소학교를 서울과 지방 관찰부 소재지 등에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1900년 최초의 중등 교육 기관으로 한성 중학교가 설립되었고 의학교, 상공 학교, 광부 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학부는 새로운 교육 제도의 실시에 따라 국민 소학 독본, 조선역사, 조선 역대 사략, 조선약사, 사민 필지 등의 각종 근대적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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