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운동
- 최초 등록일
- 2008.03.30
- 최종 저작일
- 2006.05
- 5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애국계몽운동에 관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사상적 기반
3. 정치적 지향
4. 경제적인 지향
5. 한계성 극복
6. 정치결사의 조직과 활동
7. 다양한 형태의 계몽운동
8. 맺음말
본문내용
애국계몽운동(愛國啓蒙運動)
1. 머리말
갑신정변에서 처음 부르주아적 정치운동이 나타났고 독립협회 운동에서 그것이 한층 더 확대되었다. 독립협회가 해산되고 러일전쟁의 결과로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침략이 본격화함에 따라 민족운동도 그 폭이 한층 더 넓어져 애국계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전현직 관료, 지식인층, 자산가 층이 중심이 되어 전개한 계몽운동은 개화파의 문명개화론의 전통을 잇고 있었다. 곧 신학문을 교육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교육 계몽’과 산업을 발달시켜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실업 구국’이 핵심이었다. 운동의 주체들은 국권이 미약하게 된 원인을 민족의 실력이 부족한 데 있다고 인식하였다. 때문에 학교를 설립하여 근대 교육을 보급하고 식산흥업을 민족 산업을 발전시켜서 실력을 쌓고 자강을 이루면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애국계몽운동의 모체는 보안회에서 신민회까지 연결되는 정치 사회단체들이었다. 이들 단체는 일부 정치운동도 했지만 회보 발행 연설회 토론회를 통한 국민계몽이 주된 활동이었다. 애국계몽운동은 이들 단체의 활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각 분야에서 국민을 계몽하여 실력을 양성하려는 활동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2. 사상적 기반
한말 계몽 운동가들의 실력양성론의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은 약육강식, 우승열패(優勝劣敗)를 골자로 하는 사회진화론이었다. 사회진화론은 19세기 후반 서구사회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진행되면서 부르주아들이 그들 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론으로서 강자의 약자에 대한 지배를 합리화하고 있다. 당시 계몽 운동가들은 사회진화론을 대체로 두 가지 입장에서 수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사회진화론에 나타난 제국주의 침탈을 합리화 시키는 근대지향적인 논리의 결과, 한국의 국권상실의 책임은 그 동안 실력을 키워오지 않은 한국 국민에게 있다는 식의 식민주의자들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일제 통감부에 의한 지배를 합법적인 것으로 보고 일제의 지도로 실력을 양성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주의의 침략이 생존경쟁의 결과 나타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침략행위가 보호, 평화라는 좋은 명분으로 자행되었음을 비난하였다. 이들은 제국주의의 침략이 단순한 영토의 점령이 아닌 경제적, 문화적 침략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던 계몽 운동가들은 점차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확립되면서 일제의 ‘보호정치’에 대한 비판으로 모아지게 된다.
참고 자료
강만길, 『고쳐쓴 한국근대사』, 창작과 비평사 , 1994
김태웅, 『뿌리 깊은 한국사, 샘이 깊은 이야기 - 근대편』 , 솔 , 2003
노인화, 「애국 계몽운동」, 『한국사-12』 , 한길사, 1994
조항래, 『1900년대의 애국계몽운동연구』 , 아세아문화사 , 1993
최기영, 『한국 근대 계몽사상 연구』 , 일조각 ,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