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찰가람의 배치변천과 불전의 형식변화
- 최초 등록일
- 2008.03.11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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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사찰가람의 배치변천과 불전의 형식변화에 관한 서술입니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서 1장 반정도 분량으로
요약해봤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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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최초로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파되었을 때, 즉 절이 세워졌을 당시 가장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탑이었다. 탑의 변천으로는 인도의 스투파에서 중국의 타파로 그리고 우리나라의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형태가 달랐지만 부처님을 모시는 그 의미는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 불교 전래순으로 보면 고구려에서 백제, 신라 순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고구려시대는 탑을 중심으로 금당이 배치되는 형태로 즉 탑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으며, 백제시대에는 탑과 금당이 동격화 되면서 1탑 1급당형식을 띄게 되고, 신라시대는 고구려시대의 형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1금당 2탑식으로 탑의 중요성이 떨어지면서 금당의 중요성이 높아지게 되는 형태를 볼 수 있다.
통일 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 이전까지는 교종계열의 불교이었다. 교종은 원효대사에 의해 일반 백성에게 불교이념을 가르치고 널리 구제한다는 목적이었다. 때문에 가람의 배치로는 불전이 도심내에 위치하는 평지가람 형태이었다. 이 시기의 불전의 형식으로써는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불전, 즉 감실형 불전의 형태이었다. 일반 서민들은 절에 찾아가 구복기도 및 염불을 하였고, 법당과 금당은 신의 집으로 생각하여 어떤 계층이상만 출입이 가능하였다. 또 이 시기(고려시대이전)에는 포교를 중시하고 국교 혹은 호국불교가 유행하였으며, 주심포 양식이 발달하였으며, 석가모니 중심의 불교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간단하게 건축적인 특성을 살펴보면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공간에는 ▦ □ 창살과 목재문이 있고,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은 창호지문으로 건물이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이러니하게 정면은 창호지문, 배면은 창살과 목재문으로 구성되었는데, 이것은 원래 전면도 창살과 목재문으로 구성되었었는데 조선시대 화재로 인하여 그 시대, 즉 조선시대에 맞는 창호형식으로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현재 무량수전은 양면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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