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복식
- 최초 등록일
- 2008.02.28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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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사속의 복식 에 대하여 여러 사료적 자료들을 근거로 작성한 리포트 입니다. 각각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하여 사진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목차
머리말
-현재 우리 복식 양상
본문
-고려의 사회적 배경과 복식과의 관계
1.고려 초기 중기 (오대 송 복식 영향기)
2. 고려후기 (몽고 복식의 영향기)
3. 고려말기 (명복식의 영향기)
-조선시대의 사회 양상과 복식의 흐름
1. 조선왕조 전기의 복식형성
2. 조선왕조 후기의 복식형성
- 개화기 이후의 복식변천
1. 서양문물의 도입
2. 사회개혁
3.언론의 영향
맺음말
-한국복식의 주체성을 위한 각성의 필요
본문내용
1. 고려 초기 중기 (오대 송 복식 영향기)
♈사색공복제도: 색복 계급에 있어 자, 단, 비, 녹의 4색 공복을 입음
통일신라시대 이후 복식이 이중구조를 형성하면서 고려도 신라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외국과의 관계에서 그 문화를 흡수하기 위하여 오대 송과 평화적인 친교관계를 맺었다. 제 4대 광종은 고려 역대 왕 가운데 가장 자주적인 정신을 가지고 왕권확립을 위하여 노력을 하였는데 대외적으로는 항시 대륙의 혼돈한 국제정세를 잘 관찰하여 후주와 송과 친 선책을 취하면서 사색공복제도를 마련하여 백관의 공복을 정하여 등위를 가렸다.
2. 고려후기 (몽고 복식의 영향기)
제23대 고종 때에 몽고의 침입은 정치 경제 문화 등에 걸쳐서 막대한 손실을 가져왔고 29년간의 항전 끝에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로 왕실 이하 귀족 양반계급에서는 몽고풍을 쫓는 풍조가 나타나게 되었다.
몽고풍의 영향에 대해 살펴보면 원은 중국에 동화되어 중국조정에서 물려받은 관복을 사용하였다. 이는 원이 고려에 대하여 결혼정책으로 고려를 부마국으로 예속시켜 국혼관계를 유지하면서 강력한 동화정책을 써왔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원래 상고시대 몽고지역인 노인우라의 복식과 우리나라 삼국의 복식은 같은 알타이 계통으로 호복에 속해 비슷한 점이 많았으며 13세기 몽고에 고려가 복속되면서 더욱 밀접해졌다고 하겠다.
이러한 가운데 복식에 몽고풍의 영향을 받을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개체변발
머리 변두리를 깎고 정수리 부분의 머리털만 남겨 땋아 늘인 것이다.
충렬왕은 세자로 있을 당시 원에 다녀 올 때 변발호복으로 입국하여
즉위 후에는 영을 내리어 모두 몽고의 의복과 개체변발을 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일반서민이 모두 따른 것은 아니고 지배계급인 관료층과 출세를 희구하는 일부 지식층에서만 호응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