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한옥마을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8.02.11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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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산한옥마을을 다녀온후 우리나라 전통주거 내면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리포트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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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서울시 중구 필동2가 84-1번지에 위치한 남산 한옥마을은 조선시대에는 흐르는 계곡과 천우각이 있어서 여름철 피서를 겸한 놀이터로 이름 있던 곳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청학이 노닐었다고 하여 청학동으로도 불렸으며 청학동은 신선이 사는 곳으로 불리울 만큼 경관이 아름다워 한양에서 가장 경치 좋은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동으로 손꼽히던 곳이다. 남산한옥마을에 있는 한옥은 원래 이곳에 있던 것이 아니라 서울 각지에 흩어져 있던 사대부, 일반 평민 등의 전통 한옥 다섯 채를 2,400평 대지에 이전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4년여간의 공사끝에 전통정원과 전통한옥 다섯채를 복원하여 놓고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1998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처음에 ‘남산골 한옥마을’에 예전의 남산골 샌님의 상징인 초가집이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초가집을 상상할지도 모르지만 오밀조밀한 작은 초가집들의 배치나 하회마을·낙안읍성과 같은 분위기는 없다. 남산의 예전 모습과 달리 화려하게 높이 솟아 있는 현대적 조경의 남산 위에 기와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남산은 도성의 남쪽에 있다 하여 남산이요. 본명은 목멱산(木覓山), 도읍을 옮긴 후 인경산으로 불린적이 있는데 서울(京)을 개성에서 이곳으로 끌어왔다 하여 인경산, 또 종남산으로 많은 문헌에 나오고 있는데 옛 통신망인 팔도의 다섯갈래 봉수가 이 남산에서 끝나기에 봉수 종점의 남산이란 뜻에서 종남산이란 이름도 있었다. 산세가 누에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잠두봉으로 쓴 문헌기록도 있다. 지금은 비대한 도시에 짓눌려 남산이 초라해 보이지만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산 이곳에 위치한 한옥은 총 다섯 채로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윤정효 왕후 윤씨 친가, 해풍 부원군 윤택영댁 재실, 오위장 김춘옥 가옥, 도편수 이승업 가옥이 있다. 남산한옥마을은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한옥보존 지역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옛 정취를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보였다. 이곳의 옛 정취를 되살려 시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하여 물을 흐르게 한 골짜기에는 정자를 지어놓고, 나무를 심어 전통정원을 조성하였다. 이와 더불어 서울의 8대가로 불리어오던 사대부집으로부터 일반서민의 집에 이르기까지 전통한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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