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로 살펴본 한일관계
- 최초 등록일
- 2008.02.10
- 최종 저작일
- 20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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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통신사로 살펴본 한일관계
목차
Ⅰ.들어가며
Ⅱ.조선과 일본과의 왕래
1.임진왜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2.임진왜란 직후 일본의 통신사 요청
3.사절단 파견과 통신사 편성
4.통신사의 쇠퇴와 조일 관계
Ⅲ.통신사의 의의과 일본의 시각
1.선진문화의 전달자로서의 조선통신사
2.일본이 보는 통신사와 비판
Ⅳ.마치며
본문내용
일반적으로 통신사는 조선시대 일본의 막부장군(幕府將軍)에게 파견하였던 국가의 공식적인 외교사절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 건국 후 태종 1403년(태종3) 조선이 명나라로부터 책봉을 받고, 이듬해 일본의 아시카가 정권(足利政權)도 책봉을 받아 조선․중국․일본간에 사대교린의 외교체제가 성립되었다. 이때 조선․일본 두 나라는 대등한 처지의 교린 정책으로 조선국왕과 일본 막부장군은 양국의 최고통치권자로서 현안문제 해결을 위하여 양국의 사절을 파견하였다. 이때 조선이 일본에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일본이 조선에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日本國王使)라고 하였다. 이때 통신이라는 용어는 외교관계를 가지는 두 나라가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 신의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모든 사절이 통신사의 명칭을 띠었던 것은 아니다. 때에 따라서는 보빙사(報聘使)․회례사(回禮使)․회례관․통신사․통신관․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이들 모두가 조선국왕의 명에 의하여 서계(書契)와 예물을 지참하고 일본에 가서 막부장군을 접견하였고, 형식에 있어서는 막부도 이들을 국왕사로 접대하는 데 차이가 없었다.
적어도 태종 4년(1404)부터 양국에 교린 관계가 시작되어 선조 2531년(1592~98)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의 시기를 빼고는 고종 4년(1867)말에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가 정권을 천황에게 이양하여 왕정으로 복귀되기까지 실로 400여 년에 걸친 교류의 역사가 있었다. 이처럼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교류는 그 기원이 근대는 물론 고대에까지 이어진다. 여기서는 한·일간의 정치적 관계와 교류를 조선시대 특히 임진왜란 전후시기와 관련하여 통신사라고 일컬어진 사절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조선과 일본과의 왕래
1.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과 일본의 관계
임진왜란 전의 경우, 일본에서 파견된 일본국왕사는 주로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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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식(2005), 「통신사를 따라 일본 에도시대를 가다」 , 고즈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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