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커넬사건, 미나마타병, 이따이이따이병
- 최초 등록일
- 2007.12.1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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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러브커넬사건, 미나마타병, 이따이이따이병 등 환경병에 대한 리포트
목차
러브커넬사건
미나마타병
이따이이따이병
(후기)
본문내용
러브커넬사건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나이아가라 폭포는 북미 대륙의 오대 호 중에서 에리호와 온타리오호를 이어주는 높이가 85미터이다. 1892년에 윌리엄 러브(William T. Love)가 이 곳에 10 km에 달하는 운하를 건설하여 선박을 운항하고 발전소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했다. 직류를 사용하던 당시는 장거리 송전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발전소를 세우면 많은 공장을 유치할 수 있으 며 20만 내지 100만 인구의 도시가 건설될 것을 예상하였다. 러브의 운하 건설 계획은 주 정부로부터 좋은 반 응을 얻어 승인과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1910년 운하가 1.6km 정도 만들어질 무렵 미국의 경제 불황과 교류 전류의 발명으로 운하가 의미 없게 되자 러브운하라는 긴 웅덩이만 남기고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후 수 십년 간 러브운하는 방치되어 있다가 1940년대에 후크 화학회사에서 인수하여 공장에서 버리는 화학물질 을 약 200리터 들이 철제 드럼통에 넣어 이 운하에 매립하였다. 1942년에서 1950년 사이에 무려 2만여 톤의 유 독성 화학물질을 운하에 매립한 후 1953년 이 화학회사는 러브운하를 포함한 주변 땅을 나이아가라 시교육위원회에 기증하였다. 교육위원회는 몇 년 후 이 땅에 초등학교를 세웠고 일부는 주택지로 사용하였다.
1970년대 초 건물 지하실에서 가끔 이상한 물질이 스며 나오고, 하수구가 검은 액체에 부식하는 일이 있었으나 시에서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피 부병과 두통이 자주 발병하였으며 다른 지역에 비해 유산율이 높았다. 그런데 1976년 큰 홍수가 있은 후 가로 수와 정원의 꽃이 죽어갔으며 수영을 즐기던 연못에서는 유해한 화학물질이 다량 검출되었고 토양에서도 유독 물질을 포함한 물이 표면으로 스며 나왔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몸의 통증이 나타나고, 만성 천식과 신 장 및 간 질환 등에 시달리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