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 최초 등록일
- 2007.12.14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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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낭만파와 생상스에 대한 소개와
동물의 사육제 각 장에 대한 소개와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목차
낭만파 음악
동물의 사육제
1. 서주 주와 사자왕의 행진
2.암탉과 수탉
3.당나귀
4. 거북이
5. 코끼리
6. 캥거루
7. 수족관
8. 귀가 긴 신사
9. 고요한 숲속의 뻐꾸기
10. 새
11. 피아니스트
12. 화석
13. 백조
14. 종곡
본문내용
생상스
생상스는 19~20세기의 대표적인 인물로 프랑스의 음악 진흥에 힘쓴 위대한 작곡가이다. 작곡가로서는 물론 피아니스트, 지휘자, 평론가, 시인, 화가, 나아가서는 문학 방면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사람으로 국내외에 이름을 떨쳤다.
생상스는 1835년 10월 9일 파리에서 태어났다. 생상스의 부친은 내무부의 관리였는데 그의 생후 2개월 되던 때 병사하여 그의 양육은 모친과 조모가 맡게 되었다. 생활의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못했으나 그것에 구애되지 않고 음악공부에 열성을 보였다. 그는 숙모에게서 처음 피아노를 접하고 스타마티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7세 때 피에르 말댕에게 작곡을, 보엘리에게서 오르간을 배웠다. 그가 처음 치기 시작한 곡은 하이든, 모차르트, 구레트리이며 그 후에 라모오를 알고 이 프랑스 음악가에 매력을 느끼면서 질서와 자연주의 애호자가 되었다. 베토벤의 음악에는 경탄했으나 그에게 어느 정도까지 외국인으로서 그 음악의 밝은 부분만을 인용화 해서 배웠다. 그는 11세의 어린나이에 푸레이엘 교회당에서 데뷔했다.
1853년 18세때에 제1교향곡 Eb장조를 작곡하여 지휘자 스켈이 설립한 산트-세실협회에 익명으로 작품을 바쳤다. 당시 이곡을 들은 베르리오즈나 구노는 이 곡을 이렇게까지 젊은이가 작곡한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1853년부터 5년간 성마리교회의 오르간니스트가 되고 그 후 마테린교회로 옮겼으나 1877년 그 자리를 위돌에게 물려주고 1861년 뉴델메이엘의 서거로 그의 학교에 초빙되어 3년간 교편을 잡았다. 1867년 칸타타 <프로메테우스의 결혼>이 세계박람회 기념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1871년에 일군의 젊은 음악가에 의해서 음악국민협회가 설립되고 생상스와 붓산이 그 협회의 수뇌자가 되었다. 실로 베르리오즈 이후 드봇시 이전의 프랑스 음악에 있어서의 2대 세력은 생상스와 세잔 프랑크였다. 더욱 프랑크의 음악은 가곡 적이며 불투명하고 화성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