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 산책-경주의 고분(왕릉)을 다녀와서 (고분 자신 사진첨부)
- 최초 등록일
- 2007.12.12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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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주 왕릉을 보며
신라 왕릉을 찾아 경주를 찾았다. 역사에 관해 관심이 많아 왕릉이라는 그 자체가 정치와 문화가 융화가 된 만큼 서적을 보며 정치 파트와 문화파트를 공부하며 경주로 향했다.
목차
경주 왕릉을 보며
횡혈식 적석 목곽분을 보며
통일신라 자신만의 독창성
본문내용
신라 왕릉을 찾아 경주를 찾았다. 역사에 관해 관심이 많아 왕릉이라는 그 자체가 정치와 문화가 융화가 된 만큼 서적을 보며 정치 파트와 문화파트를 공부하며 경주로 향했다. 11월말이라 날씨가 추워진 탓에 외투를 하나 걸치고 카메라를 메고 갔다. 날씨가 추워서 인지 경주는 한산했고 조용했다. 몇 나들이객이 있을 뿐 복잡하진 않았다. 내가 들른 곳은 일종의 통일신라 무덤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굴식돌방무덤이었다. 즉 다시 말해 횡혈식 적석 목곽분이었다. 신라가 통일을 한 후의 통일신라에서 주류를 이루는 무덤이었기에 견건하고 나 스스로 왕릉을 보는 마음가짐으로 왕릉 주변을 돌아보았다.
횡혈식 적석 목곽분을 보며
우선 통일신라 무덤의 양식은 신라가 통일을 하면서 고구려의 고분 영향을 받아 통일이전 시기의 신라는 돌무지덧널무덤이었지만 이와는 달리 횡혈식 적석 목곽분을 하고 있다. 일종의 우월한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고구려의 양식을 받아들여 일어난 일이라 할 수 있다. 횡혈식 적석 목곽분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목격되기도 한다. 이 횡혈식 적석 목곽분은 통일 신라 시대의 판 모양의 돌을 사용하여 널을 안치할 수 있는 방을 무덤의 맨 중앙에 방을 만들고 이 방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입구를 만들고 봉토로 뒤집어씌운 무덤 양식이다. 그래서 이러한 무덤을 토총 또는 횡혈식 석실묘라고 부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