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여인상 비교(평강공주, 선화공주)
- 최초 등록일
- 2007.12.04
- 최종 저작일
- 20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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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평강공주와 선화공주를 비교한 내용입니다.
목차
온달설화의 줄거리
무왕설화의 줄거리
온달설화와 무왕설화의 공통점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성격상의 차이
1. 평강공주의 성격
2. 선화공주의 성격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공통점
평강공주와 선화공주의 차이점
본문내용
우리 문학사에서 공주가 주인공이 된 것은‘선화공주와 온달이야기의 평강공주 뿐인데 둘 다 금을 바탕으로 삼아 미천한 남편을 출세시켰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민중들의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왕이나 온달이 개입하자 더 큰 설득력을 얻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무왕설화에서는 남녀간의 신분적 갈등을 다룬 것이라면 온달설화에서는 부녀간의 갈등을 다룬 점이 다르다.
온달설화의 줄거리
고구려 평강왕(平岡王, 平原王) 때에 이름을 온달이라고 하는 마음이 착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용모는 괴상했으나 속마음은 밝아 홀어머니를 걸식으로 봉양하며 살고 있었다. 그 때의 평강왕의 딸로서 평강공주가 있었는데 어려서 몹시 울어, 부왕이 자꾸 울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는 농담을 하곤 하였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부왕이 귀족인 상부 고씨 집에 시집보내려 하자 공주는 부왕의 평소 말대로 온달에게 가겠다고 우겼다. 부왕은 노하여 공주를 궁궐에서 내쫓자 공주는 그 길로 온달을 찾아가 결혼을 했다. 공주는 자기가 궁궐에서 나올 때 가지고 온 패물로 의식을 해결하고, 왕실의 병약한 말을 사오게 하여 잘 먹이고 온달에게 무예와 학문을 닦게 하였다. 고구려는 매년 봄 3월 3일에 수렵대회를 열었는데, 여기서 온달이 실력을 발휘하여 이 소식이 왕에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중국 후주의 무제가 쳐들어오자 온달이 선봉이 되어 무찌르니, 사위로 인정받아 그에게 대형(大兄)의 벼슬이 내려진다. 그러나 다음 왕 때에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출전했다가 아차산성에서 전사했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生死)가 결정되었으니 한을 풀라 하니 관이 움직여 비로소 장사를 지냈다.
무왕설화의 줄거리
백제 제 30대 무왕의 어렸을 때의 이름은 서동이었다. 기량이 측량키 어렵고, 늘 감자를 캐어 팔아서 가게를 삼았으므로, 사람들이 서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신라 진평왕의 제삼 공주인 선화가 재색이 무쌍하다는 소문을 그가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 서울로 와서 아이들에게 감자를 주어 어울리면서 낯이 익어진 뒤에는 스스로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쳐 부르게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