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11.28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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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한산성의 역사와 현재
목차
신라시대의 남한산성
백제시대의 남한산성
일제강점기의 남한산성
남한산성내 마을의 역사
도립공원 설립
남한산성의 지정문화제
본문내용
신라시대의 남한산성
신라가 주장성을 쌓은 시기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후 당과 투쟁에 들어가는 시기이며 특히 문무왕 12년에는 "한산에 주장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4,360보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신라를 도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한반도 지배야욕을 드러내게 된다. 이에 대하여 신라는 물러서지 않고 임진강유역과 서해안 일대에서 본격적으로 당나라와 전쟁을 수행하는 한편, 한강유역을 방어하기 위하여 한산에 주장성을 축조하였다.
주장성은 당시 신라가 쌓은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신라가 한강유역을 장악한 이후 한산이라고 불린 지역은 한강 이남의 광주·하남에 해당된다. 당시의 한산지역에 남아있는 산성으로는 남한산성이 있고, 북쪽으로 5km 지점에 이성산성(둘레 1,653m)이 있으며, 서쪽으로 9km 지점에는 대모산성(둘레 567m)이 있을 뿐이다. 남한산성을 제외하고는 둘레가 4,360보에 달하는 성은 주변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백제시대의 남한산성
남한산성이 백제의 왕도였다는 견해는 이미 조선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 되었다. 한강유역에 도읍을 정한 백제는 내·외적인 여건으로 인하여 하북위례성-하남위례성-한산-한성 등 여러번의 천도를 단행하였다.
사람들은 남한산성의 전략적인 입지조건과 수차에 걸친 백제의 천도기사로 인해 어느 때부터인가 남한산성이 백제의 왕도 중 하나일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