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사상(라이프니츠)
- 최초 등록일
- 2007.11.27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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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학윤리 철학자의 사상(라이프니츠) 보고서입니다.
직접 책을 찾아보며 작성한 보고서입니다.
많은 참고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생애와 저작
2. 라이프니츠의 사상
2.1. 방법론과 인식론
2.1.1. 본유관념과 인식의 원리
2.1.2. 진리의 종류
2.1.3. 충족이유율과 경험과학
2.2. 존재론과 자연철학
2.2.1. 모나드 형이상학
2.2.2. 목적론적·역학적 자연철학
2.3. 실천철학
2.3.1. 영혼과 육체의 상호작용
2.3.2. 귀책 가능성과 선택의 자유
2.3.3. 도덕법칙
2.3.4. 도덕의 가능성
2.3.5. 변신론
3. 감상 및 소견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생애와 저작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는 1646년 7월 1일 독일의 라이프찌히에서 법률가이자 라이프찌히 대학 도덕철학 교수인 아버지와 명망있는 법률가의 딸인 어머니 쉬무크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라이프니츠는 독학으로 라틴어를 익혀 로마 고전과 스콜라문헌을 독파하며 소년기를 보냈다. 이때 라이프니츠는 이미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과 범주체계의 논리적 유용성을 터득했다고 한다. 1661년 15세 때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법률과 철학을 수학, 이어 예나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였다. 이 무렵에 쓴 논문 『개체의 원리』(De Principio Individui)(1663) 『결합법론』(De Arte Combinatoria)(1666)은 주목할 만한 것으로, 그 내용은 후일까지 그의 사상을 일관하였다. 니콜라이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라이프니츠는 1661년 라이프찌히 대학 문학부에 입학하여 1664년에 철학 석사학위, 1665년에 법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 당시 그는 당대의 기계론적 자연철학에 큰 영항을 받았다. 라이프니츠는 관례상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박사학위가 기각되자 인근의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옮겨 1667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교수직을 제의받았지만 거절하고 뉘른베르크로가 연금술을 연구하며 자신의 학구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진출을 도모한다. 여기서 만난 보이네부르크(J.C. Boyneburg)남작이 그를 마인츠(Mainz)궁정과 대주교에게 소개함으로써 라이프니츠는 종교와 정치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당시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패권정치와 침략전쟁으로 이웃 국가들을 밀어붙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위기를 감지한 마인츠 궁중에서는 이를 제지하기 위해 라이프니츠에게 외교적 밀명을 부여하여 파리로 파견했다. 라이프니츠는 1672~76년 사이에 파리에 체류하며 외교업무를 수행하는데, 이 기간 동안 회이건스를 만나 기하학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으며, 런던을 방문하여 영국왕립학회 회원인 오울던버그(H. Oldenburg), 보일, 후크, 콜린즈(J.A. Collins) 등과 교제하였다. 라이프니츠는 자신의 외교적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지는 못했으나 이 기간 동안 미적분법을 창안하고 사칙연산을 자동으로 할 수 있는 계산기를 발명하는 등 수학과 계산학 분아에서 인류 지성하에 영원히 남을 업적을 이룩하게 된다.
1676년에 라이프니츠는 마인츠 궁정과의 관계를 끝내고 하노버(Hannover) 공국의 초청을 받아 귀국길에 오른다. 귀국 도중에 네덜란드에서 레원후크(A. Leeuwenho다)를 만나 광학 연구를 접하게 되며, 스피노자와는 보편기호학이론과 신의 존재증명에 관해 논의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