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도산서원을 다녀와서-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7.11.0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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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선생은 나이 24세(1627년, 인조 5년)에 증광(增廣-임시과거시험) 초시(初試)에 응시하였다. 당시 고관(考官)으로 있던 조익(趙翼)이 ‘보통의 글이 아니다’라고 칭찬하며 장원(일등)을 주려고 했으나, 참고관(參考官)이 식(式)에서 어긋난다 하여 차석(次席-이등)을 주었다. 이 해에 가족을 이끌고 조상들의 묘소로 인연을 갖고 있던 공주(公州) 유성(儒城) 탄방리(炭坊里)로 이사를 오게 되어 이후 후손들이 탄방리(炭坊里)에서 오래도록 살게 되었다.
이 묘역은 일제강점기에 비행기 활주로(삼천리비행장) 공사로 인해 크게 줄어들었고, 근래에 둔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도심의 섬처럼 남게 되었다. 묘역 왼편에 세워진 숭모각에 만회•탄옹의 문집목판이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다.
묘역에서 내려와 몇 십미터 떨어져 있는 도산서원으로 들어선다. 도산은 현재의 남선공원이 들어선 지역을 말하는데, 탄옹이 도학을 공부한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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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좁은 도로를 따라 800m쯤 가면 작은 네거리가 있고 대각선 모퉁이에 도산서원 입구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표석의 방향을 따라 50m쯤 가면 오른편에 도산서원 입구를 알리는 글귀가 다시 나타난다.
서원 담장의 끝자락에서 왼편으로 70m 쯤 가면 오른편으로 안동 권씨 종중에서 세운 도서관 건물이 있는데,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도산서원을 관리하는 종중 어르신을 항상 만날 수 있다.
“학문을 하는 목적을 과거(출세)에 두지 말라!”
도서관 건물 오른편 계단을 오르면 나이든 소나무를 배경으로 탄옹(炭翁) 권시 선생(1604~1672, 선조 37년~현종 13년)의 묘소가 있다. ‘탄방에 사는 노인’이라는 뜻을 가진 ‘탄옹(炭翁)’이라는 그의 호가 말해주듯이 안동 권씨 가문이 이곳으로 이사와 정착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신 분이다.
선생은 나이 24세(1627년, 인조 5년)에 증광(增廣-임시과거시험) 초시(初試)에 응시하였다. 당시 고관(考官)으로 있던 조익(趙翼)이 ‘보통의 글이 아니다’라고 칭찬하며 장원(일등)을 주려고 했으나, 참고관(參考官)이 식(式)에서 어긋난다 하여 차석(次席-이등)을 주었다. 이 해에 가족을 이끌고 조상들의 묘소로 인연을 갖고 있던 공주(公州) 유성(儒城) 탄방리(炭坊里)로 이사를 오게 되어 이후 후손들이 탄방리(炭坊里)에서 오래도록 살게 되었다.
이 묘역은 일제강점기에 비행기 활주로(삼천리비행장) 공사로 인해 크게 줄어들었고, 근래에 둔산신도시가 개발되면서 도심의 섬처럼 남게 되었다. 묘역 왼편에 세워진 숭모각에 만회•탄옹의 문집목판이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어 보관되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