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갑천의 고인돌을 찾아서-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7.11.09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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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내동리의 고인돌
칠성당의 고인돌
대정동 고인돌
계산동 쌍암고인돌
평촌돌 고인돌
용계동 고인돌
갑천 본류 따라 분포, 과학도시 시발점
본문내용
갑천의 고인돌을 찾아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대전의 서쪽 관저동에 자리한 구봉마을아파트와 신선마을아파트 사이의 넓은 도로는 한적하다. 남쪽 끝 지점(삼거리) 못 미쳐 100m 우측에 작은 공원이 있다. 신선 암공원은 고인돌이 있는 지점에 근래에 조성된 공원이다. 1.5×2.2m 크기에 두께는 약 50cm 정도인 비교적 작은 고인돌에 속한다. 이 고인돌을 조사한 결과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현재는 고인돌 남쪽에 있는 선암초등학교의 건물이 시야를 가리지만 정자(관저정)에 오르면 좌우로 길게 뻗은 구봉산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관저동 신선 암고인돌이라 부른다.
고인돌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자칫 한자어로 오해하기 쉽지만 괸돌, 고임돌이란 뜻이다. 큰 돌 아래에 작은 돌을 괴어놓은 돌 전체를 말한다. 한자식 표현으로는 지석묘(支石墓)라고 한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거석문화(巨石文化-거대한 돌에 대한 믿음, 신앙, 표식 따위의 의도적인 돌로 만든 형상을 말함)의 한 가지이지만 아시아와 유럽에 많이 분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남북한 학계에 보고된 고인돌의 수가 무려 2만 5,000~3만 5,000개로 추정되고 있다. 전 세계 고인돌이 약 7만개 정도로 보고되었으니 우리나라에 약 절반이 있는 셈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창, 화순, 강화도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내동리의 고인돌
관저동에서 출발하여 진잠 네거리에서 유성방향으로 들어선다. 왼편으로 새로 지은 아파트촌이 끝나는 지점 오른편에 차를 세운다. 옛 충남방적 근로자를 위한 야간학교인 충일여중 경비초소가 입구에 있다.
경비원에게 이야기를 하고 초소 뒤편의 고인돌을 찾아 나선다. 내동리 고인돌이다. 30여 년 전에 공장이 지어지면서 공장의 정문으로 옮겼다가 현재의 자리로 다시 옮겨진 것이다. 모두 4기의 고인돌이지만 발굴당시에는 이미 어느 정도 훼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신을 묻은 구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돌화살촉과 토기가 발견되었을 뿐이다. 제일 큰 것은 길이가 3.5m이고 나머지 3기는 비슷하거나 크기가 작다. 대전시 기념물 제3호이다.
칠성당의 고인돌
다시 유성방향으로 약 500m를 가면 신호등이 있고 왼편으로 작은 마을이 보인다. ‘칠성당이’이다. 마을을 따라 100m 들어가면 오른편에 의자 등을 만드는 가구공장이 있다. 가구공장 왼편에 작은 골목(식당입구)이 있는데 채소밭과 담장 사이로 50m를 오르면 오른편에 몇 기의 묘소가 있는데 묘소의 뒤에 고인돌이 자리 잡고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