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영정조 탕평책에 대한 고찰 내용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英祖의 蕩平策
1. 蕩平論의 대두
2. 英祖의 調劑蕩平
3. 淸要職 革罷
Ⅲ. 正祖의 蕩平策
1. 正祖의 實事蕩平
2. 淸要職의 再建과 革罷
3. 奎章閣과 壯勇營 설치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18세기가 한국사에 있어서 중세적 질서의 동요와 그에 대한 여러 측면에서의 대책과 수정이 모색되고 시행되던 변화의 시기였다고 함은 이제 일반적으로 수긍되고 있다. 조선후기의 정치사를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 쟁탈의 수준으로만 이해한다면 조선후기의 역사를 폭넓게 이해함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18세기의 사회경제적 변화나 그에 대한 대응으로 등장하는 실학 및 사회적 제도 개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당시의 정치상황 내지 변화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조선시대 정치사를 내재적 발전론과 구조적 관점에 입각해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시각은, 1970년도 후반기에 나타났다. 그 출발은 ‘黨爭’ 또는 ‘黨派性’ 이 조선 정치사의 특징으로 말해지는 현실을 비판하는데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통용되는 일반적 인식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黨爭’論 대신, 붕당의 균형과 견제를 이 시기 정치형태의 특징으로 파악하려는 ‘朋黨政治’論이 1980년대부터 체계화 되었다.
붕당정치론은 조선후기 정치사를 한 단계 전진시키는데 상당히 기여하였지만 이가 제기된 이후에도 조선후기 정치사 연구수준을 한 단계 높여야 할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리하여 현재 조선시대 정치사는 정치가 조선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이어주는 역할이라든지, 정치 변화와 사회 변화의 구조적 관련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조선사회에 독특한 정치체제를 이해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 사상사적 측면을 천착해가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정치사를 보다 보편적인 이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 구조사적 측면을 천착해가는 노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18세기를 조선정치의 발전 단계상 ‘蕩平政治期’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참고 자료
최완기, 「영조조 탕평책의 찬반론 검토」,『진단학보』56, 1983
정만조, 「영조대 초반의 탕평책과 탕평파의 활동」,『진단학보』56, 1983
정옥자, 「정조시대 연구총론」,『돌베개 한국학 총서』2, 1999
정옥자, 「정조시대 사상과 문화」,『돌베개 한국학 총서』2, 1999
박광용, 「영ㆍ정조대 탕평책의 추이와 성격」, 서울대석사논문, 1983
박광용, 「탕평론과 정국의 변화」, 『한국사론』10, 1984
박광용, 「붕당정치와 탕평」, 『동양학』19, 1989
박광용, 「조선후기 탕평 연구」, 서울대박사논문, 1994
이인수, 「정조의 정국운영과 탕평책의 성격」, 국민대석사논문, 1993
박경민, 「영조대 탕평책에 관한 연구」, 인제대석사논문, 2002
이강원, 「영조대의 탕평책과 국사교과서의 서술」, 전북대석사논문, 1997
왕정직, 「조선후기 탕평론의 추이」, 전남대석사논문, 2004
김은희, 「영ㆍ정조대 탕평기반 조성을 위한 제도개혁 고찰」, 경성대 석사논문,
2001
이희환, 「영조대 탕평책의 실상(上)」, 『전북사학』25, 전북대학교 사학회,
pp45-82
설석규, 「규장각과 정조의 개혁정치」, 경북대 석사논문, 1984
이태진,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범조사, 1985
박광용, 『영조와 정조의 나라』, 푸른역사, 1998
박현모, 『정치가 정조』, 푸른역사, 2001
김성윤, 『조선후기 탕평정치 연구』, 지식산업사,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