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국영화와 영화산업의 흐름과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07.11
- 최종 저작일
- 2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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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영화 역사와 영화산업의 흐름
목차
1. 1900~1945
2. 1945~1953
3. 1954~1962
1963~1987
1988~현재
마치며.
본문내용
1. 1900~1945
➀ 활동 사진의 상영과 한국영화의 등장
대중에게 사랑받는 영화가 등장하기 까지는 새로운 구경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한 끊임없는 기술의 도전과 경쟁이 있었다, 한국에 활동사진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03년 6월 하순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는 황성신문에 거재된 활동사진관람 광고를 근거로 한 것이다.
이 광고에 따르면 동대문 전기회사 기동사진을 갖추어놓고 상영하는데 관람 시간은 일요일과 비오는날을 제외한 오후9시부터 10시까지이며 입장료는 10전이라는 내용이다. 이 광고를 근거로 활동사진의 도래시기를 1903년으로 할때 일본에 영화가 들어온지 6년만에야 수입이 성사되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상설관의 모양을 갖춘 영화흥행장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6년부터 정식 명칭을 갖게된 동대문 활동 사진소라고 할수 있다. 그이후에 7~8년 동안 우리나라에는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급속하게 늘어났다 남촌의 송도좌를 비롯하여 어성좌, 황금관, 단성사, 장안사, 우미관등이 생겨났다.
➁ 식민시대, 무성영화의 전성기
한국영화사 연구에서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시기를 무성영화의 전성기 라고 부른다. 무성영화의 특징으로는 민족주의와 식민정책의 갈등을 들 수가 있는데 여기에서 결정적인 요소는 두 가지 이다. 1926년에 만들어진 나운규의 아리랑이 한국인 전체를 충격과 흥분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첫 번째 측면이라면. 다른 하나는 일본 식민지 당국의 정치적 탄압과 검열이다. 일본의 검열은 매우 폭력적이고 엄격하여 아리랑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단 한편의 영화도 제작되지 못하였다. 나운규가 제작한 아리랑은 당대인들에게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걸작으로 평가 받아 영화를 본다는 것이 한국인 전체의 관심사로 확대되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