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7.05.06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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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김구에 대해 쓴 레포트 입니다.
평가부탁드립니다.
목차
1. 백범 김구의 생애
2. 백범 김구의 연표
3. 백범 김구의 인물로서의 특징과 사상
4. 김구의 역사적 의의
본문내용
백범 김구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중 하나이다. 독립운동을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쳤고, 해방이 되어서는 하나된 민족을 위해 살아가시다, 이승만등의 반 민족주의자들에게 암살되었고 그의 사상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구의 민족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아직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감명을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구 민족주의와 자주독립에 대한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다 비록 암살이라는 결말로 끝났지만 지금 현재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 백범 김구의 사상과 그의 생에 대해 알아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김구의 활동과 사상에 대해 서술해 보려고 한다.
1. 백범 김구의 생애
김구(金九) 1876(고종13)~1949. 독립운동가, 정치가, 본관은 안동, 아명은 창암(昌巖), 본명은 창수 (昌洙) 개명하여 구(九 龜), 법명은 원종(圓宗), 환속 후에는 두래(斗來)로 고쳤다. 자는 연상(蓮 上), 초호는 연하(蓮下), 호는 백범(白凡)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 텃골(基洞) 출신.순영(淳永) 의 7대 독자이며, 어머니는 곽낙원(郭樂園)이다. 인조 때 삼정승을 지낸 방조(傍祖) 김자점(金自點)이 권세다툼에서 청병(淸兵)을 끌어들였다는 역모죄로 효종의 친국을 받고 1651년사형당하자, 화를 피하여 선조되는 사람이 그곳으로 옮겨 갔다.
9세에 한글과 한문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아버지의 열성으로 집안에 서당을 세우기도 하였다. 14세때에 「통감」,「사략」과 병서를 즐겨 읽었으며, 15세때에 학자 정문재(鄭文哉)에게 한학을배웠다. 17세에 조선왕조 최후의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벼슬자리를 사 고 파는 부패된 세태에 울분을 참지 못하여 1893년(고종30) 동학(東學)에 입교하여 접주(接主)가 되고, 황해도 도유사(都有司)의 한 사람으로 뽑혀 제 2대 교주 최시형 (崔時亨)과도 만났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