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가야금 - [악학궤범]과 [증보문헌비고]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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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 가야국의 가실왕은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서 가야금을 만들었다. 가실왕이 이르기를, ‘여러 나라의 방언이 그 성음에 있어서 서로 다르거늘 어찌 획일화할 수 있겠느냐’라고 하면서 성렬현 사람인 악사 우륵에게 명령하여 열 두 곡을 짓도록 하였다. 나중에 우륵은 그 나라가 장차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서 악기를 가지고 신라의 진흥왕에게 의탁하니, 진흥왕(540-576)이 그를 받아들여 국원서 편히 살도록 하고서 곧 대내마 법지와 계고 그리고 대사 만덕을 보내서 그 업을 전수시켰다. 이 세 사람들은 그의 열한 곡을 전수받고 난 뒤 서로 말하기를, ‘이 곡들은 번거롭고 음란하여 아담하고 바르다고 할 수 없다’라고 하면서 드디어 줄여서 다섯 곡으로 만들었다. 우륵은 처음에 그 소식을 듣고 성을 내었으나, 마침내 그 다섯 곡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며 감탄하기에 이르기를,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아니하며 애처로우면서도 슬프지 아니하니 바른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 후에 그 악곡을 임금 앞에서 연주했더니 왕이 듣고서 크게 기뻐하였다. 이때 간신이 헌의하기를, ‘이 악곡들은 멸망한 가야국의 음악이니 취할 것이 못됩니다’라고 하였더니, 왕이 가로되, ‘가야왕이 음란해서 자멸한 것이지 음악이 어찌 죄가 되겠느냐? 대체로 성인이 음악을 제정함은 인정에 연유하되 준절케 하는 데 있거늘, 나라가 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것은 음악에 연유되지 않느니라’고 하면서, 드디어 시행하도록 함으로써 가야고 음악은 대악으로 발전되었다. …(중략)… 우륵이 지은 열두 곡은 첫째 하가라도, 둘째 상가라도, 셋째 보기, 넷째 달기, 다섯째 사물, 여섯째 물혜, 일곱째 하기물, 여덟째 사자기, 아홉째 거열, 열째 사팔혜, 열한째 이사, 열두째 상기물이다. 이문이 지은 세 곡은 첫째 까마귀, 둘째 쥐, 셋째 메추라기이다.
樂而不淫 哀而不傷(논어 八佾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가야금
『삼국사기』에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가야금 또한 중국 악부(樂部)의 쟁(箏)을 본받아 만들었다.『풍속통』(風俗通)에 이르기를 “쟁은 진(秦)나라 악기이다” 하였고,『석명』(釋名)에 이르기를, “쟁은 그 줄을 높여 그 소리가 쟁쟁하다. 병주(幷州)와 양주(梁州)의 쟁의 모양은 슬(瑟)과 같다” 하였고, 부현은 말하길,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아래가 평평한 것은 땅을 상징하며, 속이 비어 육합(六合: 上下·東西南北)에 준하고, 현(絃)과 안족은 12월을 본떴으니,
참고 자료
최태현 [구성요소로 보는 국악곡] 현대음악출판사.
백대웅 [한국전통음악분석론], 도서출판어울림.
백대웅, [한국 전통음악의 선율구조], 도서출판어울림.
윤소희, [국악창작곡의 흐름과 분석], 국악춘추사.
윤명원, [국악분석연구모음], 국악춘추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