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Ⅰ. 백제의성립과발전, Ⅲ. 대외관계
- 최초 등록일
- 2007.04.17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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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Ⅰ. 백제의성립과발전, Ⅲ. 대외관계
목차
I. 백제의 기원
2. 백제의 성립과 발전
Ⅲ. 백제의 대외관계
본문내용
I. 백제의 기원
1)백제 초기사를 보는 시각
백제 초기사에 대한 견해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입장의 차이와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견해는 계승성을 인정하는 견해로 『三國志』韓條의 마한 소국 중의 하나인 3세기 무렵의 백제국과 4세기 이후의 백제와의 관계를 연속선상에서의 계승관계로 보는 것이다. 이 견해는 다시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역사적 사실의 정확한 반영으로 인정하는 긍정론과 대략적인 추세는 인정하나 구체적인 왕실 계보에는 일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절충론으로 나눌 수 있다. 두 번째 견해는 불연속을 강조하는 견해로 4세기 중반 이후 급작스러운 발전을 이루는 백제의 왕실은 그 출자면에서 이전의 백제국과는 별개로 만주지역에 존재하던 기마민족이 남하해 세운 일종의 정복왕조라는 것으로 『삼국사기』초기기록에 대한 강한 의문을 품고 있다. 여기서는 연속성을 인정하는 입장을 취하며 『삼국사기』초기 기록에 대해서는 절충론적 입장을 취한다.
2)건국설화
백제의 건국설화는 네가지의 설이 있다. 첫째는 온조를 시조로 하는 설이다. 왕성을『삼국사기』는 부여씨,『삼국유사』는 해씨로 보나, 모두 주몽에서 온조로 이어지는 계보를 백제왕실의 근간으로 간주하고 있다. 둘째는 비류를 시조로 인정하는 설로 이 경우는 주몽은 비류 ․ 온조 양인의 계부에 지나지 않고, 해부루 - 우태 - 비류가 백제 왕실의 뿌리가 된다. 셋째는 구태를 시조로 보는 설이다. 『주서』에서 백제를 마한의 속국, 부여의 별종이라며 구태란 자가 대방에서 처음으로 나라를 열었다는 내용이『수서』단계에 와서 부여의 위구태와 구태를 혼돈하여 대방태수 公孫度의 딸과의 혼인 기사가 첨가되어 동명신화와 결부되면서 나온 것이다. 마지막은 일본측 사서에 전하는 도모설이다. “백제 태조 도모대왕은 일신이 강영하여 부여에서 개국하였는데 후에 여러 한을 총괄하여 왕이라 일컬었다”라는 내용으로 왜지의 백제계 도래인들 중 자신의 계보를 도모에 연결시킨 예가 많다. 첫째 전승은 고구려의 주몽과 직결되나 둘째, 셋째 전승은 부여와 직접 연결되고, 넷째는 부여와 고구려를 포괄적으로 인식하는 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3)건국집단의 기원과 주민구성
(1) 건국집단의 기원
『삼국사기』는 주몽 - 온조로 이어지는 계보를 채택했고, 『삼국유사』는『삼국사기』내용을 답습했으나, 우태 - 비류로 이어지는 전승 역시 중요한 것은, 백제 건국세력의 주체에 온조계와 비류계가 양립한 시기가 있었음을 반영하고, 비류가 형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른 시기에는 비류계집단이 온조계집단보다 우월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맹을 형성하였던 현실의 반영이라고 보여진다. 비류를 시조로 인정하는 전승에서는 압록강유역에서 주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