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우리나라 형벌제도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07.01.04
- 최종 저작일
- 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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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형벌제도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 조사한 글입니다. A 받았습니다.
목차
1. 우리나라의 교정역사
2. 고려이후 조선
3. 조선 후기의 근대적 행형
4. 일제시대
5. 미군정시대
본문내용
1. 우리나라의 교정역사
1) 고조선, 부여시대
고조선사회: 팔조금법(한서지리지) 중 전해지는 3개조를 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갚아야 하며,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는다. 다만 자속하고자 하는 자는 50만전을 내야 한다.” 철저한 응보형론을 취하고 있다.
부여시대:
①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는다.
② 절도죄에 있어서 일책12법을 적용. 훔친 물건에 대하여 그 12배의 배상을 부과한다.
③ 간음이나 투기한 부녀에 대하여는 모두 사형에 처하고, 시체를 산위에 버려서 썩게 한다고 하여 남녀간의 불륜행위와 여자의 질투를 엄형으로 다루는 등 응보형론을 보임.
④ 영고와 같은 공동 축제일에 모든 형옥을 중단하여 죄수를 석방하던 풍습을 가졌다.
이 시대에는 탈레스 원칙이나 보복적인 형벌사상에서 크게 진보되어 공, 형벌 사상이 정착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 삼한
삼한의 부족 사회는 북쪽에 비해 발전이 더뎌 오랫동안 신석기시대에 머물러 있었다. 소도라고 불리는 특별구역이 있어. 이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악기의 구실을 하는 방울과 북을 달아 강신에 대한 안내 또는 신의 영역의 표지로 삼았다. 소도는 신성지역으로 법률의 힘이 미치지 못하여 죄인이 그 안으로 도망가더라도 그를 붙잡아 가지 못하게 하였다.
3) 고구려
① 고구려는 산악지방에 위치한 지리적 불리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주변제국과의 항쟁 속에서 출발하여 상무적이고 정복적인 고구려의 기질은 행형에도 그대로 표현되어 형벌이 매우 준엄하였다. 모반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으며 재산은 몰수하였다. 패전자, 투항자, 살인자, 겁탈자도 사형에 처하였으며, 도둑질한 자는 12배의 배상을 물게 하고 만약 배상하지 못하게 되면 그 자녀를 노비로 삼게 하였다. 범죄자는 제가평의회의 의결로 즉결 처형하였다.
참고 자료
역사풍속기행/이이화 저/역사 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