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12.22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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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사상 대한 레포트 입니다.
내용, 형식 깔끔하게 정리 되어있구요.
역사학 공부하시는 분들 도움되시겠네요.
목차
Ⅰ. 序論
Ⅱ. 本論
1. 法家思想의 등장과 社會的 배경
2. 法家의 주요 人物들
1)商鞅
2)申不害
3)愼到
4)韓非子
3. 法家의 歷史觀
4. 法家의 統治方法
Ⅲ. 要約 및 結論
본문내용
4) 한비자(韓非子)
전국시대의 법가주의 사상을 종합하고 이를 사상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 바로 한비자다. 한비자가 죽은 지 15년 후에 전한의 사가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한비는 `형명(刑名)`, `법술(法術)`을 좋아했는데 그 돌아감은 황로사상(黃老思想)에 근본한다. 이사와 더불어 순자를 섬기었다"고 기록했다.
한비자는 한나라 공자(公子)로 진시황 때 재상이 된 이사와 함께 순자의 제자로서 성악설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한비자는 유가의 `덕치주의`나 `예교주의`를 배척하고 법치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법치의 기본은 `엄형주의(嚴刑主義)`와 철저한 `신상필벌`을 원칙으로 했다. 군왕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강한 나라이고 이를 위해서는 강한 군대(强兵)가 필요하고 부국을 위한 농업생산의 발전을 내세워 상업과 공업을 말업(末業)으로 억압했다. 한비자는 법치의 운영 방법으로 술치와 제치를 함께 사용해야 함을 강조했다. 즉, 백성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법`이 필요하고 관리를 부리기 위해서는 `술`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法 . 術 . 勢`는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라고 했다. 한비자는 `형명동참(刑名同參)`이란 용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신하들이 하는 말(名)과 실제의 공로(刑)를 비교하여, 서로 부합하면 상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벌을 주어 신하들의 망언이나 악행을 방지하고 그 책임을 분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한비자의 ‘刑名論(형명론)’은 名家(명가)의 實在論(실재론)과 상통한다.
3. 법가의 역사관
중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과거의 경험을 중시한 것은 아마도 압도적으로 많은 농업인의 사고방식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다. 농부들은 토지에 자기의 모든 생활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여가가 거의 없었다. 농부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사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토지를 경작하여야 하므로 과거의 경험은 농사를 짓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되었고 어떤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할 때는 의례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이러한 심리가 은연중 중국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공자 이래 여러 학자들은 대부분 고대(古代)의 권위 있는 인물에 의탁하여 자기 학설을 옹호하였다. 공자는 문왕과 주공에, 묵자는 공자의 설을 개선하기 위해 문왕․주공보다 1천년 앞선 인물인 우임금에, 맹자는 묵가보다 한걸음 더 올라가 우임금보다 앞선 인물인 요순에게, 최후로 도가들은 유가와 묵가에 대항하여 자기들의 사상을 전파시키기 위하여 요순보다 앞선 인물인 복희(伏羲)와 신농(神農)의 권위에 각각 위탁하였다. 이렇게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이들 사상가들은 복고적 역사관을 만들어 내었다. 이 사상가들은 제각기 다른 학파였지만 모두 인류의 황금시대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였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였고 역사의 움직임은 그 때부터 점차적으로 퇴화의 길을 걸어왔다. 그러므로 인간의 구원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데 있지 않고 이미 있었던 것으로 되돌아가는 데 있다고 보았다.
참고 자료
1.「중국고대사의 전개」, 이춘식, 신서원, 1986
2.「중국의 철학사」, 풍우란 저, 정인재 역, 형설출판사, 1989
3.「동양사개론」, 신채식 저, 삼영사,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