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부흥운동과 민요시운동
- 최초 등록일
- 2006.12.2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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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조부흥운동과 민요시운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시인에 대한 참고설명도 첨부해둬 이해하기 훨씬 쉽습니다.
목차
1 .시조부흥운동
1.1 시조 부흥 운동의 배경과 성향에 대해
1.2 시조 부흥을 둘러싼 논란
2. 민요시운동
2.1 민요의 전승과 변모
2.2 민요시운동을 위한 논의
2.3 민요시 작품의 실상에 대해
결 론
본문내용
1 .시조부흥운동
민족문학파의 또 하나의 관심사는 민족문학 형식의 새로운 발견을 위한 노력이라 하겠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문학양식으로 내세운 것이 시조와 민요였다.
시조가 국민문학의 양식으로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한 사람은 최남선이었다. 그는 시조를 가리켜 “가장 조선인다운 또한 조선말에 들어맞는 형식”이라고 말한다. 또한 1927년 「新民」잡지 3월호에 ‘시조를 부흥할 것인가’하는 설문을 내걸었는데 이 설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이은상, 이병기, 주요한, 양주동, 손진태 등이었다.
그런데 六堂은 시조의 내용상 제일조건으로서 ‘朝鮮스러움을’ 내걸었는데, 이러한 주장은 당대 문학에서 시조가 어떤 구실을 할 수 있는가를 살피지도 않고 현실과 무관한 복고주의적 관념론에만 매여 있었다. 六堂의 작품들은 거의 다 초 ․ 중 ․ 종장의 자수를 지키고 있으며, 변형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내용면에서는 조국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노래하였고 형식면에 있어서 전통 계승적 입장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六堂의 시조부흥운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모든 문학양식은 당대 현실과 밀착되어야 하거늘 六堂의 시조부흥운동은 창조적 차원을 효과적으로 타개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모순을 눈치 챈 사람은 가람 李秉岐였다. 그는 1932년 1월 東亞日報에서 ‘시조를 혁신하자’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그는 이 글에서 시조를 참되고 새롭게 지으려면 고시조에서 유래한 내밀한 원리를 깊이 체득한 기반 위에서 작품의 혁신을 꾀해야 한다면서 그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가람의 시조혁신론
① 實感, 實情을 표현하자
② 취재의 범위를 확장하자
③ 用語에서도 구투를 버릴 것
④ 형식이나 형태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와 인식을 가질 것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지면 종로판에서 싸구려 싸구렷소리 나누나
사람들이 쏘다져 나온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갓쓴이 벙거지쓴이 쪽찐이 깎은이 어중이 떠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엉기엉기 훙성스럽게 오락가락한다. 높드란 간판달은 납작한 기아집 케케이 싸힌 몬지 속에 묵은 갓망건 족도리 청홍실부터 어릿가개 여중가리 양화 왜화부티 썩은 비웃 쩌른 굴비 무른 과일 시든 푸성개붙이 십전 이십전 싸구려 싸구려 부르나니 밤이 깊도록 목이 메이도록
참고 자료
한국현대문학사론 民知社 1990
한국근대문학의맥락 도서출판전망 2001
한국현대문학사 현대문학출판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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