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북위 균전제
- 최초 등록일
- 2006.12.2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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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위서에 나오는 북위 균전령을 전종별로 분석하여 위진남북조, 수 , 당 대의 토지제도 문제와 시대구분 문제를 다루고 있는 논문입니다.
목차
1. 問題提起 p 1
2. 均田制의 실시 배경
-李安世의 上疏를 中心으로- p 3
3. 均田制에 나타난 田種의 성격 p 7
가. 露田의 성격 p 7
나. 桑田의 성격 p 9
다. 麻田의 성격 p 13
라. 園宅地의 성격 p 14
4. 均田制 시행 세칙의 성격 p 14
5. 마치면서 p 17
본문내용
1. 問題提起
한 시대의 사회발전 정도를 보여주는 指標는 그 시대의 기본적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와 그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관계 및 계급관계, 그리고 생산수단을 이용하는 기술의 축적여부라고 할 수 있다. 전근대사회의 주요 산업은 農業이었다. 따라서 농업의 근간이 되는 土地와 그것과 결부된 土地制度는 전근대사회의 역사적 실상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지표가 된다. 토지제도는 경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전근대 농업사회에서 경제와 정치는 불가분의 구조적 결합 관계에 있으며, 그렇게 토지제도는 단순히 경제범주이기를 넘어 國制 곧 국가 형성의 기본 원리를 담는 정치 범주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풍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어 왔으며, 土地制度가 지닌 중요성을 감안할 때 많은 대립적 의견이 제기되고 논쟁이 지속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均田制에 관한 연구는 매우 활발히 전개되었다. 왜냐하면 중국역사에 등장하는 여러 土地制度 중에서도 均田制는 성격상으로도 그 이전과 이후의 것과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均田制가 頒布되고 施行된 北魏부터 隋․唐 代까지의 시대적 성격을 규명하는데 유용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연구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均田制가 실제 시행되었고, 그 영향을 인정하는 주장과 이와는 반대로 均田制의 성립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均田制의 시행과 영향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北魏, 太和 年間에 시작되어 北朝․隋․唐에 걸쳐 시행되었던 것으로 알려진 均田制에 대해 본격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연구한 사람은 鈴木俊이다. 鈴木俊은 唐初에 均田制 시행을 위한 적극적인 준비 작업이 있었다는 것을 史料上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것과, 則天武后大足元年(701)에서 代宗 大曆 4年까지의 敦煌에서 발견된 唐代의 戶籍문서를 검토하면, 戶籍에는 均田制에 의해 농민이 받아야 할 應受田額(혹 合應受田), 실제로 지급된 형태로 나타나 있는 已受田額, 應受田에서 已受田을 제한 未受田 및 永業田, 口分田, 居住園宅地, 勳田, 買田 등이 기재되어 있지만, 이러한 각 戶의 토지소유관계를 戶籍에 기재함에 있어서는, 먼저 실제의 所有地인 已受田을 규정의 범위 내에서 永業田으로 기록하고 그와 동시에 已受田 중에서 居住園宅地, 買田, 勳田 등이 있으면 그것을 기록하고 그 외의 土地를 口分田으로 하여 永業田을 중심으로 均田法規에 맞추어 기재하였다는 것, 敦煌에서는 전체적으로 還受가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문서상에 나타나는 각 戶의 已受率의 격차가 극히 심하다는 것 등을 들어 均田制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