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4~6세기 경의 삼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에 관한 글
목차
1.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2. 백제와 중국의 관계
본문내용
1.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1) 남북조 시대 이전의 대외관계
高句麗는 지형적인 여건의 이유로 중국과의 교섭은 물론 전쟁이 불가피하였다. 『三國史記』의 기록을 보면 고구려의 대외관계 기사가 다른 百濟, 新羅에 비해 많음을 알 수가 있는데 즉 고구려는 외교전개가 전쟁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 할 수가 있다.
대무신왕 15년 12월, 사신을 漢에 보내어 조공하니, 광무제가 왕호를 회복케 하였다. 이때는 건무 8년이었다.
위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와 중국의 관계 기사 중 가장 앞선 것이다. 이를 통해 대무신왕이 조공을 보내어 왕호를 회복했음을 알 수가 있고 회복했다는 기록을 통해 이 전부터 이미 고구려와 중국 간의 관계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고구려 초기 중국과의 외교 관계 기사는 굉장히 적음을 알 수가 있다. 이는 고구려의 성장과정에서 나타난 중국과의 빈번한 전쟁에 따른 불편한 관계에 기인한 것이다. 또 후한 이후 중국의 분열에 따른 잇따른 중원왕조의 변화가 교섭 상대국을 찾는데 어려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천왕 이후 고구려는 중국과 활발한 관계를 가지기 시작한다.
(후략)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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