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 최초 등록일
- 2006.12.12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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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목차
<제 1장.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제 2장.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 어거스틴의 주요 저작 분석 비판>
본문내용
<제 1장. 어거스틴의 생애와 사상>
어거스틴은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서구 철학과 신학의 사상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이성의 범주를 벗어난 비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라는 점을 변증하였고, “마음의 움직임으로서의 사랑”이 하나님을 향해 움직이는 인격의 함양과 구현이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깨달음을 강조한 신학자였다.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의심을 가지지 않았던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왜 하나님을 믿는가” 가 아니라 “어떤 하나님을 믿는가” 였다. 이처럼 그는 기독교 신앙의 진리를 전파하고 변증했던 사도 바울 이래 최고의 하나님 일꾼이었다.
어거스틴은 354년, 경제적으로 중산층이었던 아버지 패트리시우스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부모는 세속 출제를 향한 학업의 길을 터 준 아버지보다는, 절대 진리인 하나님을 향한 길을 열어주고자 노력한 어머니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섬겼던 기독교 신앙의 하나님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다. 사실 어거스틴이 성장하던 때는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본격적인 기독교화의 물결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가 살던 다가스테에서는 하나님은 단지 사람과 유사한 형태와 성격의 의인화된 신적 존재였다.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Hortensius를 읽고 난 후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았던 기독교 신앙과 성경에 대해 커다란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성경이 모순 덩어리라는 회의와 마니교가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게 카르타고에서 우수한 수사학 학생으로 인정받으며 지냈던 어거스틴은, 참된 지혜가 이성의 능력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9년 동안 방황하였다. 그리고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세계관과 점성술의 천문학적 세계관 사이에서 모순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마니교에 회의를 느끼고, 마니교와의 단절이 아닌 더 나은 세속적 발전을 위해 어머니 몰래 로마로 출발했다. 그는 수사학 교사로서 신망을 받았는데 로마의 유력자였던 심마쿠스와, 심마쿠스의 사촌이자 당시 밀라노의 주교였던 암브로스라는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늘 상류층 사회로 진출해 신분이 상승하는 길을 걸었고, 자신의 세속적 야심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절대 진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늘 갈망하고 있었다. 그가 수사학 교사로 있을 당시 품었던 문제를 안고 씨름하던 그에게 암브로스는 우의적 성경 해석에 근거한 설교는 그가 마니교를 믿고 받들면서 떨치지 못했던 하나님 의인화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었다. 그것은 어거스틴으로 하여금 암브로스의 정통 기독교로 돌아왔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