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훈, 회색인 서평
- 최초 등록일
- 2006.12.04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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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최인훈의 <회색인> 서평입니다. <서유기>와 함께 최인훈의 연작 소설 중 하나이며, 개인의 실존적 문제를 분단의 모순과 결부시켜 서술한, 작가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소설입니다. 이 서평은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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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어릴 적에 하얀 스케치북에 거의 모든 색의 크레파스를 서로 덧칠한 적이 있었다. 이 모든 색들을 다 더하면 어떤 색이 나오게 될까. 어떤 색만 남게 될까. 그러다 결국엔 검은색만 남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규칙 없이 엉켜버린다면 곧 검은색만 남는다는 뜻이었을까. 내가 처음 최인훈의 ‘회색인’을 접할 때도 이런 느낌이었다. 각각을 잘라내어 생각할 수 없는 글, 반복되는 듯 반복되지 않는 듯 혼란스럽게 만들어가는 상황과 그 인물 각각의 생각들. 어쩌면 스케치북에 남게 된 유일한 검은색이 변질되어 ‘회색’처럼 되어버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 ‘회색인’의 첫 느낌은 이런 모습이었다.
독고 준은 전쟁 통에 어릴 적 살던 북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다. 북에서 겪었던 이단 심문소(異端審問所)의 배교자 역할, 과부가 된 누나, 월남한 아버지, 홀로 시내에 나섰다가 방공호 속에서 느끼는 한 여자아이의 살 냄새, 밤에 신성한 의식처럼 치르는 남한의 라디오 방송. 이 속에서 그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 기저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서 소외되어 있는 것을 느낀다. 이 때에 그가 선택한 길은 최인훈이 말한 ‘내부로의 망명,‘ ’내적 유배지‘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2. p112
에서의 책읽기였다. 그에게는 남한도 북한과 마찬가지의 공간이었다. 경건하게 들었던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따라 남으로 온 그에게 남한은 지긋지긋한 현실과 아버지의 외로운 죽음만을 안겨주었다. 라디오 방송은 ‘그의 가슴을 달고 아릿한, 기쁨과 슬픔의 어느 것이라고는 집어낼 수 없는 야릇한 감동으로 막히게 했’지만 결국은 그에게 ‘단 하나의 악(惡)’임을 알게 해주는 역할이었을 뿐이다.
월남한 후 대학등록금마저 내지 못할 형편이었던 준은 북에서 가져온 노동당원증으로 옛 매부였던 현호성을 협박한다. 현호성은 그에게 자신의 집에서 같이 살자고 제의, 수락하게 된다. 준은 자신의 이러한 모습에서 ‘드라큘라’를 발견한다. 또한 ‘사람의 피 대신에 시간을 씹은’ 그는 한때 사랑했던, ‘행복한 은총받은 귀여운 색맹(色盲)’ 김순임과의 재회에서도 자신의 ’드라큘라‘의 모습을 발견한다. ‘교회에 대한 반항의 설화이며 진짜 피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에 대한 협박’의 상징인 드라큘라. 그는 김순임에게 느끼는 연민(憐憫0으로 괴로워하다가 ‘물고 싶은 사람을 물지 않는 역설’을 자신에게 강요할 것을 다짐한다. 결국은 역드라큘라의 의미를 구성했으면서도 그러한 모습에 놀라는 자신의 도덕적 갈등이 해결되는 것일지도.
참고 자료
최인훈, <회색인>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잎>
레이몽 아롱, <참여자와 방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