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텡 게르의 귀향
- 최초 등록일
- 2006.12.02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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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르탱게르 소감문
1. 시대적 배경
2. 16세기 농민들의 생활상(종교,여성,창작된결혼 등)
3. 가짜마르텡, 버트랑, 코라스 판사에 대한 소견
4. 영화 전체 소견및 평
이 포함되어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가짜가 진짜가 되는 순간 진짜가 돌아와서 가짜를 패망으로 만든 사건. 그 사건을 담당판사가 기록하였고, 그 기록을 토대로 만든 영화가 바로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다.
이 사건은 16세기 전반, 남프랑스 바스크지방 아르티가에서 일어났다. 16세기 전반은 지중해 남부에서 르네상스가 절정기에 맞이하였을 때다. 물론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말이다. 16세기 초 프랑스는 힘에서는 스페인에 밀리고 문화에서는 문화는 이탈리아에 한참 모자랐다. 그것을 극복하려했던 인물이 바로 프랑수와 1세다. 이 사건도 그의 재위 기간 중인 1540년대말에 일어났다. 그는 스페인과 왕위계승 전쟁을 벌였고, 이탈리아를 원정, 프랑스에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기존에는 귀족과 성직자가 국가의 주요 관직을 독점했으나, 점차 도시에서 배출한 국왕에 충성하는 전문직종의 부르주아들이 국왕의 법관, 회계사, 전술가, 외교관 등으로 국왕을 보좌하게 된다. 또한 세금, 군대, 사법의 권한을 영주에게 위임하는 대신 국왕이 직접 그 권한을 장악한다. 권력은 점차 중앙집권화 되어갔다. 신 · 구교간의 대립도 있었다. 프랑스에 들어온 신교를 위그노라고 불렀다. 1520년대부터 프랑스 정부는 이들을 감시하기 시작하다가 1525년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가 파비아 전투에서 합스부르그 가의 황제 찰스 5세에게 패해 포로가 된다. 황제 찰스 5세는 철저하게 신교를 배척하는 카톨릭교 신봉자 였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위그노들을 탄압함으로써 국왕의 송환을 약속받으려 한다. 두 번째의 신· 구교 대립은 1534년 10월 18일 위그노들이 파리 광장에 모여 카톨리교를 규탄하자, 프랑스 정부는 즉시 그들을 체포하고 신교도들의 탄압을 시작합니다. 존 칼뱅과 그 일당도 이때 프랑스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15~6세기의 전쟁은 총, 대포를 비롯한 각종화약무기의 등장과, 대규모 보병대가 전장의 주역이 되었다. 진짜 마르탱이 집을 떠나 군대에 간 이유도 당시 전쟁에 쓰일 보병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의 모 사극들과는 달리 고증이 잘 되었다고 찬사받는 영화이다. 특히 당시 농민의 삶을 잘 표현되었다고 찬사를 보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