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현대사
- 최초 등록일
- 2006.11.29
- 최종 저작일
- 2006.11
- 11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500원
소개글
중공 창당 후 구추백 노선부터 90년대 국학열까지 중국 현대사 압축이구요.
모택동 사상들(모순론, 실천론 및 신민주주의론 등) 등소평으로 이어지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에 관련한 것과, 모택동 만년오류(대약진,인민공사)
문화대혁명, 강서소비에트시대, 대장정, 구추백 이립삼 왕명 노선들,
문화열과 국학열 등등 거의 총망라에요. 하나하나 자세히 말고 중국 현대사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목차
구추백 노선
이립삼 노선 (약한 고리론)
왕명 노선 (강서 소비에트 시기, 토지혁명)
모택동 노선 (신민주주의론 ,사회주의 개조시기, 건설시기, 문화대혁명)
등소평
문화열과 국학열
현재의 중국 분파
본문내용
@모택동(毛泽东)의 위상(모택동 思想) : 중국의 현대사를 이야기할 때 모택동을 빼 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그에 대한 평가는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편이다. 중국은 모택동을 마르크스주의와 중국 고유의 특징을 결합시킨 ‘중국식 사회주의’의 창시자라고 주장하는 반면, 타국에서는 경험주의자나 경험주의의 변종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더 많다.
@등소평(邓小平): 중국에서는 등소평이 모택동을 계승하였다고 말한다. (實事求是) 겉으로 보면 시장경제를 도입한 등소평과 모택동은 반대로 보이지만, 등소평이 모택동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중국공산당은 21년 창당 후, 진독수-> 구추백(瞿秋白) -> 이립삼(李立三) ->왕명(王明) -> 모택동으로 이어지는 권력의 이동을 보인다. 모택동은 이 과정에서 당의 오류를 바로잡아,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낸 혁명의 영웅으로 중국에서 설명하고 있고, 모택동 자신은 혁명을 성공시킴으로써 ‘자신이 곧 실체다’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급좌 오류의 선두 구추백은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라 주장하면서 중국공산당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여 군중과 국민당의 힘을 과소평가하였다. 잇단 실패로 임기를 1년 정도 채우고 1927년 상해 대참사로 인해 192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 6大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리를 박탈당하였음. 나선형 역사관을 주장하였음.
@1929년 구추백의 뒤를 이은 이립삼은 구추백과 같은 급좌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추진하였음. 그는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이 성숙되었다고 판단하여 무장투쟁을 강조하였는데, 그 배경에 20년대를 풍미한 세계대공황이 있다. 그는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의 종말이 온 것으로 생각하였고, 당시 국내의 상황도 장개석에게 충성을 바칠 군벌이 별로 없었고, 점점 장개석 vs 군벌의 대립구도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국내 역량이 성장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비록 미미한 세력이었지만, 홍군의 창설도 그의 판단에 한 몫 했다.
참고 자료
수업내용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