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철학사 중 퇴계과 고봉의 쟁점을 다루고 있다. 목차참조하세요
목차
Ⅰ. 서 론
Ⅱ. 사단칠정논변이란
Ⅲ. 사단칠정논변의 전개
1) 고봉의 문제 제기
2) 문제제기에 대한 퇴계의 답변
3) 퇴계의 답변에 대한 고봉의 반론
4) 고봉의 반론에 대한 퇴계의 재답변
5) 논변의 결말
Ⅳ. 맺는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서 론
사단칠정논변은 16세기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으로부터 시작하여, 율곡과 우계를 거쳐 이후 300년이상 조선의 거의 모든 학자들에 의해 언급이 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논변이다. 이것은 정(감정, 의식일반)을 이기론과 연결시킨 점에서 성리학 사상의 주목할 만한 논쟁이라 할 수 있고, 바로 이 논변을 기원으로 삼아 조선 성리학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퇴계학파(영남학파, 주리파)와 율곡학파(기호학파, 주기파)가 성립되었으므로, 사칠논변은 조선 성리학이나 한국철학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사단·칠정에 관한 논변은 그 내용의 다양함으로 보나 후세에 대한 영향력으로 보아 한국 성리학의 특징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1553년 추만 정지운은 천명도를 해설하는 가운데, “사단발어리 칠정발어기”(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라고 말하고, 이러한 표현의 타당성을 퇴계에게 물었다. 퇴계는 추만의 표현을 “사단이지발, 칠정기지발”(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이다)로 고쳐 제시하였고, 이것이 고봉에 의해 비판을 받자 궁리 끝에 “사단지발순리고무부선 칠정지발겸기고유선악”(“사단이 발하는 것은 순리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이 발하는 것은 겸이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라고 약간 완화된 사용을 써서 고봉에게 보냈는데, 고봉이 여전히 이를 비판하고 나서자, 퇴계와 고봉간에 8년에 걸쳐 편지글이 오간 것이 퇴계과 고봉간에 벌어진 사칠논변의 전말이다. 즉, 논변의 발단은 인간의 정인 사단·칠정을 이·기로 나누어 해석함으로써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Ⅱ. 사단칠정논변이란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변은 단적으로 말해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한 논변이다. 사단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예로 들은 이타적, 도덕적 감정이고, 칠정은 『예기』에서 인간의 감정을 일곱 가지로 표현한데서 기원한 것으로 인간감정 일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칠논변은 일차적으로 도덕적 감정과 감정일반의 관계에 관한 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칠논변은 감정의 관계를 다룸에 있어서, 성리학의 이, 기나 심, 성, 정의 개념들은 물론이고, 개인의 수양과 사회개혁의 실천이라는 성리학의 기본패러다임을 총체적으로 건드리고 있기에, 단순한 감정의 논의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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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연, (1994), “율곡의 인성론 - 사단칠정과 인심도심을 중심으로-”, 『율곡사상연구』, 율곡사상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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