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16세기 안동지방의 동계, 동약
- 최초 등록일
- 2006.11.2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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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사회경제사에 관한 자료입니다...
16세기 안동지방의 동계와 동약에 대해 조사해놓은 것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안동 지방 동계․동약의 자료
3. 인적 구성과 지역적 범위
4. 동계․동약의 기능
5. 임란 후 동계․동약의 변화 양상
6. 맺음말
본문내용
6. 맺음말
16세기의 동계 ․ 동약은 족계로도 표현되듯이 주로 동 단위 사족의 족적 기반을 토대로 하여 성립하고 동족 간, 또는 촌락 내 사족 상호간의 부조와 상구를 우선적으로 목적하고 있었다. 재지사족은 이러한 상부상조를 통해 상호 결속력을 강화하는 한편, 유교적인 예속을 격식에 맞게 거행할 수 있음으로써 하층민에 대한 차별성을 강화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신분적 불평등과 함께 촌락의 하층민을 통제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었다.
재지사족은 동계 ․ 동약을 통한 하층민에 대한 통제로 상하 신분질서의 확립과 전호농민에 대한 경제적 예속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즉, 16세기의 동계 ․ 동약은 유향소와 함께 재지사족의 향촌지배에 기반을 이루고 있었다.
16세기의 동계 ․ 동약은 임란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대체로 상하인이 함께 참여하거나 또는 상하계가 합계(上下合契)되는 형태로의 전환이었다. 이러한 동계 ․ 동약체계에서 하층민의 참여는 강제적이었고, 하층민의 조직인 하계 ․ 소계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었다. 이러한 전환은 한편에서는 임란 이후 향손사회의 피폐 때문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하층민의 저항의 산물이기도 하였다. 이것은 사족 자신만의 결속으로는 하층민을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으며, 따라서 이제 하층민을 촌락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족의 향규와 국속(國俗)의 동린계를 합하여 상하인이 함께 참여하는 향약을 제정하였던 것도 이같은 사정에서 이해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