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성균관 유생의 자치활동
- 최초 등록일
- 2006.11.18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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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론본론결론에 맞게 잘 해노았으며, 각주까지 달아있습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본론
1.성균관 유생의 자치활동
1).재회
2).유벌과 발론
2.성균관 유생의 사회참여
1).유소
2).공관
3).권당
Ⅲ맺음말
본문내용
1)재회(齋會-학생회)
재회의 임원을 색장(色掌)이라고 하였는데, 이에는 장의(掌議), 상색장(上色掌), 하색장(下色掌) 각각 2인씩 6인으로 구성되며 그 외에 비임원으로 조사(曹司)와 당장(堂長) 등이 있었다.
학생회장격인 장의는 동․서재에서 각 1인씩 2인을 선출하는데, 현임 장의의 추천과 전임 장의들의 합의에 의해 뽑는 소위 간접 선거제였다.
색장은 상․하색장으로 나위어지는데, 동․서재에 상재생으로 2인, 하재생으로 2인 등 모두 4인을 장의에 준해서 선출하였으며, 주 임무는 식당의 도기(到記) 검찰과 문묘의 청소장이었다.
재회는 학생 자치활동을 위해 구성된 학생회로서 비교적 민주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상은 상당히 권위적인 구조를 지녔으며 관생간의 위계서열과 정치적인 파당색의 반영이 큰 폐해를 낳기도 하였다. 비교적 제한적인 자치였으나 때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재회의 허용은 선비기질의 함양을 위한 국가의 유생 우대 정책의 일환이었으며, 재회는 조정 사회의 축소판이었다고 하겠다. 또한, 자유스런 분위기는 보장되지 않았던 것 같으나, 일단 재회에서 결정된 사항들은 공식적인 것이 되어 외부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지키려는 태도를 보인 것으로 여겨진다. 주어진 여건이 어찌되었든 일종의 동류의식들이 작용하여 자율적인 능력을 기를 수 있는 모임이었다. 그리도 정치적인 훈련의 한 과정으로서 위계질서 의식이 내면화 되는 모임이기도 하였다. 이는 ‘예(禮)’라고 하는 성리학적 특징의 차별적 사회화가 성균관 유생 집단 내부 간에도 철저히 적용되는 것이었다고 여겨진다.
참고 자료
장재천, 『조선조 성균관 교육과 유생문화』, 아세아 문화사, 2000年
피정란,『성균관 유생의 자치활동에 관하여』, 1996年
최종세,『중국의 지성5인이 뽑은 고전 200』, 예문서원, 2000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