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을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6.11.1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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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덕수궁을 실제로 다녀와서 쓴것입니다..
덕수궁에 있는 건물들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각 건물을 보고 느낀점을 적은 글입니다.
마지막에 최종적으로 덕수궁을 감상한 내용을 총정리해서 써놓았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마지막으로 중화전을 보며 덕수궁 관광을 마쳤다.
중화전의 웅장함과 화려하면서 단아함에 경이로움을 금치 못했다.
중화전은 고종이 덕수궁으로 거처하는 곳을 옮긴 1902년에 창건되고. 재위기간 동안 정전으로 사용되었으며, 이곳에서 왕이 관리들의 하례를 받고 조회를 하던 곳으로 중화문과 함께 보물 819호 지정되었다.
다른 궁궐의 정전이 가운데 자가 ‘정’자 돌림인 것과 달리 덕수궁의 중화전은 돌림자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고종이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로 새로 출발하면서 사용한 궁궐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한다. 중화전은 19~20세기의 왕실 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중화전 안에는 국왕이 앉았던 어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어좌 뒤에는 일월오악병이 있었는데, 이것은 병풍으로, 왕이 계시는 곳 뒤에 항상 있고, 봉우리와 해ㆍ달ㆍ붉은 소나무ㆍ두 줄기 폭포가 그려지며, 왕권의 무궁한 발전과 융성을 염원하는 뜻이 담겨져 있다.
중화전은 의례공간의 특성에 맞는 건축적 배치와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품계석이 왕조사회의 위계와 질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중화전의 약간 밑에 조그만한 비석이 좌우로 놓여져 있는데 좌우로 각각 12개였다. 정일품부터 정구품까지 있는데 일품(一品)부터 삼품(三品)까지는 정(正)과 종(從)의 품계석을 두었는데, 국왕의 자리는 남쪽에 있는데 품계석은 좌우 양방향으로 있는 것으로 보아 동서의 기준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왕의 오른팔 왼팔 노릇을 하여 나라를 번창시키라는 뜻이 담겨있는 듯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본 사극에서는 왕이 국정을 보는 단으로 올라 갈 때 뒷편에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에는 계단이 앞쪽에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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