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홍길동전』
- 최초 등록일
- 2006.11.17
- 최종 저작일
- 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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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허균의 생애와 홍길동전에 대한 정리.
목차
1.허균의 생애.
(1) 가문
(2)성장수학(成長修學)
(3) 인생관
2. 홍길동전(洪吉童傳)
(1) 작품 형성 배경
(2)작품에 반영된 사상
(3) 중국 소설과의 관계
본문내용
1.허균의 생애.
(1) 가문
허균 (1569~1618)은 본관이 양천(陽川)이며, 경상감사 허엽(許曄)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우성전(遇性戰)의 부인인 큰누나와 맏형 성(筬)은 이복(異腹)이며, 둘째 형 봉과 둘째 누나 난설헌은 당대에 문명을 떨친 문인이었다. 허균은 호를 교산,성수,성성옹,백월거사라 하였고, 자는 단보였다. 부친 초당 혀엽은 소년기에 화담 서경덕 밑에서 수학했으며, 당시의 선비들 사이에 이름이 높았다. 명종 원년 문과에 급제한 이래, 선조 대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갈라질 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우두머리가 되어 활약했다. 부제학을 거쳐 경상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가 병을 얻어 사퇴하고, 얼마 후 상주 객관에서 64세로 사망했다. 이때, 허균의 나이 12살이었는데, 부친이 노쇠한 몸으로 기생첩을 지나치게 가까이 하여 조갈증이 심해지고, 그래서 약을 복용한 끝에 조급 증세의 병을 얻어 벼슬자리를 물러나고, 그래서 약을 복용한 끝에 조급 증세의 병을 얻어 벼슬자리를 물러나고, 그 길로 사망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이 부친의 일이 ‘홍길동전’ 의 초두 초란 구성에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에 그러한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허엽은 오랫동안 벼슬자리에 있었고, 명나라의 사신으로 가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였으며, 청렴결백한 선비로서 사사로운 정에 끌리지 않고 왕에게 직언으로 충간 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이러한 기질 역시 아들 허균에게로 이어졌음은 홍길동 인물 설정을 통하여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허균의 백씨 허성(1548~1612)은 허균보다 22세나 위이다. 그는 미암 유희춘의 문인으로 선조 원년에 생원시험에 장원했으나 대과 급제는 36세의 나이에 이룩하였다. 허균의 둘째 형 허봉(1551~88)은 허균과 18세의 나이 차이가 있다. 형 허성과 함께 유희춘의 문인이며, 생원시는 형과 같은 해인 선조 원년에 급제하였으나, 대과에는 형보다 11년이나 앞서 급제한 수재였다. 이후, 그는 탁월한 재능을 인정 33세에 이르는 동안 성절사를 따라 명나라를 다녀오기도 했고, 부수찬,교리,창원부사 등의 관직을 역임했다. 이때, 부친과 형의 뜻을 받들어 동인의 활동을 도왔는데, 같은 무리인 박근원,송은개 등과 함께 이이의 죄를 논하다가 당쟁에 휘말리었고, 급기야 3사람 모두 함경도 변방지역으로 정배를 당하고 말았다. 이들을 이른바 계미삼찬이라고 하며, 허봉이 귀양 간 곳은 종성 지방이었다. 이어서 종성 방면에 병란이 있어 다시 갑산으로 위배되었었다.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은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문인으로 이름이 났었지만 27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그는 사람인 손곡,이달에게서 시를 배웠고, 재능이 뛰어나 8세 때에 ‘백옥루상량문’을 지어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