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서태후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6.10.16
- 최종 저작일
- 20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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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 책은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통해 읽을 책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비록 권장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은 아니지만 내가 읽고 느낀바가 있어서 이 글을 쓴다.
이 책은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전기이다. 당대와 후대인 지금에 사람들은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존경하고,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본 ‘연인 서태후’라는 책에서는 그녀를 ‘꽃과 칼날의 여인’ 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서태후의 인간적 형상, 즉 보편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결점들을 넘어, 그녀가 그러한 행동을 행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들을 그녀가 주거한 자금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이 책은 우연히 인터넷 서점을 통해 읽을 책을 찾다가 알게 되었다. 비록 권장 도서 목록에 있는 책은 아니지만 내가 읽고 느낀바가 있어서 이 글을 쓴다.
이 책은 소설적 요소가 가미된 전기이다. 당대와 후대인 지금에 사람들은 그녀를 철의 여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존경하고, 업적을 기리기보다는 비판적이고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본 ‘연인 서태후’라는 책에서는 그녀를 ‘꽃과 칼날의 여인’ 이라고 표현하면서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서태후의 인간적 형상, 즉 보편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결점들을 넘어, 그녀가 그러한 행동을 행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들을 그녀가 주거한 자금성을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럼 우선 ‘서태후’라는 인물은 누구인가? 인물 백과사전을 보면 서태후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청나라 함풍제의 후궁이며, 동치제의 생모인 자희황태후. 별칭은 효흠현황후, 자희황태후로 불린다. 함풍제의 사후 동치제가 6세에 즉위하자, 공친왕과 공모하여 쿠데타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모후로서 동태후와 함께 섭정이 되었다. 1875년 동치제가 죽자, 누이동생의 3세의 아들을 옹립, 광서제로 즉위시켜 자신은 섭정이 되었다. 광서제가 16세가 되자 친정이 시작되었으나, 국정의 실권은 서태후가 쥐고 있었다. 1898년 광서제가 이를 싫어하여 입헌파 캉유웨이에 접근, 신정을 실시하여 입헌군주제를 위한 전환을 꾀하자, 서태후는 보수파 관료를 부추겨 쿠데타를 감행, 신정을 100일로 종식시키고 광서제를 유폐하는 무술정변을 일으켰다. 의화단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이용하여 열강에 대해 선전을 포고하였으나, 8개국 연합군의 침입을 받아 시안으로 피신하였다. 모든 진보적 개혁에 반대하던 서태후도 베이징[北京] 귀환 후에는 입헌 준비, 실업, 교육의 진흥 등 신정을 실시하였으나 대외적으로는 배외정책에서 굴욕적 외교로 전락하여, 중국의 반식민지화는 더욱 심각해졌다. 청왕조의 권위 실추와 함께 혁명운동·입헌운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광서제가 죽은 하루 뒤에 죽었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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