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서술의 경향에 관한 연구
- 최초 등록일
- 2006.10.06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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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성심성의껏 작성한 논문입니다. 참고하셔서 좋은 성적 받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목차
논문요약
제 1장 서 론
제 1 절 연구의 필요성
제 2 절 연구 내용과 방법 및 한계
제 2 장 한국교회사의 사관 이해
제 1 절 선교사관
제 2 절 민족교회 사관
제 3 절 민중교회 사관
제 4 절 개혁주의 사관
제 3 장 초기한국교회의 신앙의 내연과 외연
제 1 절 초기한국교회의 신앙의 내연
제 2 절 초기한국교회의 신앙의 외연
제4장 결 론
참 고 서 적
본문내용
한국기독교의 역사서술은 사관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발전 과정은 백 낙준 박사의 선교사관에서 시작하여 민경배교수의 민족교회사관을 거쳐서 주 재용교수의 민중교회사관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사관은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 가혹한 비판을 받고 있다. 선교사관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선교식민사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고, 민중사관은 보수진영부터 복음이 없는 사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고, 민족교회사관은 보수진영에서는 복음을 축소할 위험이 있는 사관으로, 진보진영에서는 민중이 없는 사관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선교와 민족 그리고 민중의 문제는 교회의 정체성을 달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용어 선택의 문제다. 보수진영의 표현대로 하면 신앙과 경건의 문제이고, 진보진영의 표현대로 하면 복음화와 인간화의 문제이며, 중도 진영의 표현대로 하면 신앙적 내연과 민족과 민중적 외연의 문제다. 결국 표현상의 문제일 뿐 복음이라는 본질에서 만나는 것인데 본질이 다른 것처럼 서술하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신앙적 내연(복음화)과 외연( 경건 또는 인간화)의 측면에서 서술하였다.
개신교회의 신앙에 있어서 신앙적 내연(복음화)과 외연(인간화 또는 경건)은 교회와 성도를 성립시키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초기한국교회는 1903년 이전까지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복음화) 보다는 민족적, 민중적 외연(인간화 또는 경건) 중심의 교회였다. 초기 기독교를 수용 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은 기독교 신앙의 내적 체험(복음화) 보다는 기독교의 외연(인간화) 을 보고 기독교를 수용한 사람들이었다. 개화파 사람들은 개화의 수단으로 기독교를 택했고 하층민들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때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생존권과 생명을 보호받기 위하여, 경제력과 변화의 적응력은 있으나 제도에 장벽에 막혀 있는 서북사람들은 권리를 찾고 뜻을 펼치고자 교회를 찾았다. 선교사들도 초기에는 민족과 민중을 중시하는 외연(인간화) 중심의 선교에 주력한다.
1903년 감리교 선교사들에 의해 원산에서 시작된 내적체험(신앙적 내연) 운동은 1907년을 정점으로 기독교 신앙이 내적 체험(복음화) 위주로 전환되면서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내연(복음화) 중심의 신앙 흐름이 지속된다. 내연(복음화)의 에너지는 1919년 3, 1운동이라는 이름의 외연(인간화) 으로 분출된다.
참고 자료
민 경배. 「한국기독교 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2000년)
민 경배, 「민족교회 형성 사론」 (연세대학교 출판부, 1984년)
박 용규. 「한국교회사강의안」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박 용규, 「초대교회사」, (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6)
김 영재. 「한국교회사」(개혁주의신행협회 1998)
김 영재, “세계선교 동향과 한국에 대한 선교정책”「한국기독교와 역사, 제6호」
백 낙준. 「한국 개신교회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