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후감]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스프랑스와 민족혁명
- 최초 등록일
- 2006.10.01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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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스프랑스와 민족혁명] 독후감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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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한국과 프랑스는 각각 일본과 독일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점에서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한국과 프랑스 둘 다 힘의 논리에 의해서 점령을 당하였으나 점령당한 기간의 차이, 시기의 차이 그리고 억압강도의 차이, 정신적 개입여부 등의 측면에서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이 글에서는 책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시 프랑스와 민족혁명]을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독일의 지배방식과 프랑스의 모습을 살펴보고 일제치하의 우리나라의 모습과 식민지 시대의 잔재 청산의 과정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우선 독일 지배하의 프랑스의 모습부터 살펴보기 위해 비시 정부에 대해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 1940년 6월 22일 페탱은 휴전조약에 서명하였고 이후 프랑스는 크게 점령 지역과 자유지역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북쪽의 독일 영역이었고, 후자는 남쪽에 있는 프랑스 비시 정부의 영역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비시 정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페탱을 수반으로 한 친독 프랑스 정부이다. 비록 비시 정부가 친독 정부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된 프랑스와 고통받는 시민들에게는 비시 정부의 수립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성립된 비시정부의 내각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비시 정부를 구성하는 집단은 독일 점령으로 인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제3공화국 정치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로는 프랑스 방패론의 페탱과 라발, 이중 방패론의 플랑댕과 다를랑, 다시 유럽 방패론에 라발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비시 정부 수립 후 많은 정권들이 바뀌면서 비시와 반비시 간의 갈등은 계속 되어갔다.
그러나 프랑스는 독일 점령 하에서 비시와 반비시의 차원을 넘어서서 민족혁명을 지지하였다. 이러한 민족 혁명은 hegemony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hegemony란 본래 그리스어로서 ‘인도하다. 안내하다. 선도하다.’ 등의 의미를 가지는 단어이다. 독일이 식민지배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개입을 하지 않은 채 프랑스가 ‘공동체’적 민족혁명을 해나갈 수 있었던 것은 hegemony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프랑스의 민족혁명이란 정치적 성격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민족혁명은 프랑스 정치 문화에서 쉽게 공감을 얻어낼 수 있었던 일종의 ‘생각 가치’라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시 프랑스와 민족혁명/박지현/책세상/2004
http://www.banmi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