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자유인, 제 3종인 논쟁
- 최초 등록일
- 2006.09.26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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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胡秋原과 蘇汶의 문예이론
2. 좌익문예이론가들의 비판
3.오류의 극복과 논쟁의 의의
본문내용
Ⅱ. 자유인, 제 3종인 논쟁
자유인. 제3종인 논쟁은 1931년 말부터 1934년에 걸쳐 행해졌다. 이 논쟁은 ‘자유인(自由人)’을 자처한 胡秋原 및 ‘제3종인 (第三種人)’을 자처한 蘇汶 등과 좌익문예이론가 사이에 문예의 계급성과 당파성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이 논쟁은 ‘자유인’ 호추원이 마르크스주의 문예이론을 옹호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또한 ‘제3종인’소문이 한때 좌련의 성원이었다는 점으로 인해 ‘신월파’나 ‘민족주의문학파’와의 논쟁과 성격이 다름을 볼 수 있다.
1.胡秋原과 蘇汶의 문예이론
호추원의 문예이론은 1931년 12월15일 <<文化評論>>에 발표한 <阿狗文藝論>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민족주의 문예는 “문예를 진정으로 애호하는 사람들에게 천시 받아야 마땅하며”, “문학과 예술은 죽는 한이 있어도 자유롭고 민주적인 것” 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민족주의 문학파를 거세게 공격하였다. 아울러 그는 ‘좌련‘ 측의 무산계급문학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강하게 공격하였다. “예술이 비록 지상(至上)의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하(至下)의 것도 결코 아니다. 예술을 정치의 축음기로 타락시키는 자는 예술의 반도이다” 그의 문학 주장은 “예술은 ‘생활의 표현, 인식과 비평` 이란 한가지 목적만을 지닐 뿐”, “위대한 예술은 표현, 비평의 능력을 다하기만 하면 곧 예술을 위함과 동시에 인생을 위하게 된다”는 것으로 , 곧 “예술이란 사상감정의 형상적 표현이며, 예술의 가치는 거기에 함축된 사상감정의 높고 낮음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이다.
이어서 호추원은 1932년 4월 <<문화평론>>을 통해 <문예를 침략하지 말라(勿侵略文藝)>라는 글을 발표하여 자신의 견해를 거듭 확인하였다. 그는 정치적 입장에 입각하여 민족주의 문예나 무산계급문예의 어느 한쪽을 찬양하거나 부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예의 태도에서는 예술이론에 근거한 분석이나 예술정책에 근거한 배척, 지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결코 어느 하나의 예술 존재에만 근거하여 나머지 예술을 배척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나는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김시준, 《중국 현대 문학사》, (서울 : 지식산업사, 2000)
호추원에 이어 문예의 자유논쟁에 불을 붙인 이는 소문이었다. 1932년 7월1일 <<現代>>에 발표한 <‘문예신문’과 호추원의 문예논변에 대하여(關於‘文新’與胡秋原的文藝論辯)>라는 글을 통해 호추원을 절대적 비공리주의자로 간주하는 한편, 좌익문단을 마르크스-레닌주의자라 공격했다. 그는 ‘지식계급의 자유인’과 ‘부자연스럽고 당파적인’계급이 문단의 패권을 다툴 때 가장 괴로움을 받는 것은 이들 두 부류 외의 작가의 무리인 제 “3종인”이라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1.胡秋原과 蘇汶의 문예이론
2. 좌익문예이론가들의 비판
3.오류의 극복과 논쟁의 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