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박정희를 친일파로 규정하는 사람과, 그를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규정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의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박정희를 친일파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양하게 제시하여, 하나의 레포트로 담았다.
목차
들어가며
살펴보며
1.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
2.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 만화박정희.p32
3.110여차례에 걸친 항일 세력의 토벌과 간도 특설부대
4.창씨개명-‘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
맺으면서
※참고문헌※
본문내용
살펴보며
우선, 박정희가 친일파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무엇일까? 박정희를 친일파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크게 5가지의 점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진충보국 멸사봉공으로 알려진 혈서 사건, 그가 군관학교를 졸업하면서 한 선서, 110여 차례에 걸친 항일세력의 토벌, 일본의 특수부대-간도특설대-에서의 활약, 창씨개명 이 그것이다. 이러한 근거에 대해서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1.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나와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30년대 후반 돌연히 만주로 건너가 군관학교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정희가 다닌 대구사범학교는 건강한 민주시민을 육성해 내는 곳이 아니라, ‘충량한 황국신민’ 즉 일제의 정책에 협조하고, 순응하는 양순한 식민지 백성을 길러내는 데 충실한 초급교사를 길러내는 곳이었다. 즉, 사범학교는 학생들에게 제국주의의 우월성을 주입하는 동시에 식민지 엘리트로서 자의식을 끊임없이 내면화 시킴으로써 체제 순응적인 교원들을 양성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만주신경군관학교에 입교하게 된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가 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당시 동료교사였던 유증선이 ‘박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며 제안하자 박정희는 그 자리에서 찬동하고 혈서를 썼다고 한다. 다시 말해,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 즉, ‘충성을 다해 일본에 보답하고, 나를 죽여 국가를 받들겠다’라는 일왕에게 바치는 충성혈서(忠誠血書)를 써서 만주신경군관학교로 보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일본의 철저한 신원조회, 사상검증에도 불구하고 1940년 4월1일 만주신경군관학교에 입교에 꿈에 그리던 일본군 장교가 되었다. 조갑제-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103화
는 것이다.
이러한 일화가 사실임을 증명해주는 기록을 보면, 1962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비서였던 이낙선 중령이 정리한 비망록에도 ‘원래 일본 육사는 연령초과였고 만주군관학교도 연령초과였으나 군인이 되고자 하는 일념에서 군관학교에 편지를 하였다. 그 편지가 만주신문에 났다.’라는 부분이 실려 있다.
참고 자료
한국일보 2005.8.15
조갑제-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양성철, 박정희와 김일성, 한울,1987
이영호, 유리카한국위인특대전집 31, 박정희, 학원출판사,
민족문제연구소, 만화 박정희. 시대의창, 2005
김종신, 박정희 대통령 서울;한린출판사 1970
송효빈, 가까이서 본 박정희 대통령 서울:휘문출판사 1977
차상훈(편집부), 중국 조선민족 발자취 총서 4권, 교보문고,1994
김종호, 희망을 심어준 대통령 박정희, 아이세상,2000